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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신협은 서민금융 중추…규제는 풀고 감독은 엄격히”

등록 2012-12-31 15:38수정 2012-12-31 15:39

유용우 논골신협 이사장은 신협이 지역사회 협동조합들의 금융허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용우 논골신협 이사장은 신협이 지역사회 협동조합들의 금융허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헤리리뷰
막오른 협동조합 시대/ 유영우 논골신협 이사장에게 듣는다

12월1일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됐다. 앞으로 1년 안에 3천개의 새로운 협동조합이 태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 전반이 활성화되기에는 제도와 인식의 장애물이 많다.

무엇보다 협동조합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신용협동조합과 같은 협동조합금융의 발목이 꽁꽁 묶여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협운동을 이끌어온 서울 성동구 논골신협의 유영우 이사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5면에 협동조합 전문가 3인의 글도 함께 싣는다. 협동조합기본법 시대의 개막 이후 정책적으로 개선하고 협동조합 내부에서 풀어가야 할 과제를 제시한다.

“금융당국의 인식과 제도가 바뀌어야 해요.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논골신협 건물의 아래층에 성동두레생협 매장이 있는데, 우리가 대출을 해주고 싶어도 못해요. 새로 생겨나는 협동조합이 있어도 출자도 못하고요. 까다로운 금융 규제 때문이지요. 법인 대출도, 출자도 신용협동조합은 할 수가 없게 돼 있어요. 개인(조합원) 대출만 가능해요.”

공적자금 지원 뒤 자율성 사라져 ­
다른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게 신협의 소임 아닌가요?

“맞아요. 원래 신협의 역할은 두가지예요. 하나는 담보가 없는 가난한 서민들에게 신용으로 금융을 제공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같은 사회적 경제 전반의 자금조달을 뒷받침하는 역할이지요. 그런 일을 하자고,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쌈짓돈을 모아서 신협을 세웠잖아요.”

­그러고 보면 우리 금융당국에는 협동조합금융의 개념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요. 신협을 다른 제2금융권과 똑같이 취급하지요. 불안한 금융으로 여기고, 재무건전성만 깐깐하게 따집니다. 신협의 가치와 역사, 협동조합금융 전반에 대한 이해가 없어요. 신협 스스로 잘못한 측면도 있지만요.”

­신협은 자율적으로 생겨난 협동조합인데, 언제부터 그렇게 됐나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입니다. 신협이 부실해지면서 공적자금을 지원받았고, 금융당국의 강력한 규제가 따라왔어요. 신협의 자율성이 꼼짝없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그로 인해 신협의 존재 이유인 서민금융 역할까지 위축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신협에 대한 서민들의 신뢰도 무너졌지요. 지금까지도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 협동·연대 노력해야 ­
그래도 건강한 신협이 여럿 있지요?

“신협을 저축은행 같은 곳과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성남의 주민신협, 안산의 화랑신협, 원주의 밝음신협 같은 곳은 지금도 지역사회 협동조합네트워크의 금융 허브 구실을 잘해내고 있습니다. 이런 단위신협 모델이 전국적으로 많이 확산돼야 합니다. 다행히 신협중앙회에서도 다른 협동조합 지원업무를 맡는 ‘협동조합 간의 협동’ 전담부서를 신설하기로 했습니다. 직원 3명을 배치했으며, 각 지역의 지부에도 담당부서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신협 스스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지역사회와 긴밀한 협동과 연대를 해야 해요.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다양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주민들의 신협 참여를 끌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금융당국이 규제로 막고 있고, 신협 스스로도 그렇게 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협이 협동조합다운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거지요.”

자연스럽게 논골신협을 처음 만들 때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유 이사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논골신협이 있는 성동구 금호동 일대는 꼬불꼬불한 달동네, 이른바 재개발 지역이었다. “세입자들이 주거권을 지키자고 철거에 맞선 싸움을 벌였어요. 그러면서 밤에는 공부를 했습니다. 가난은 나라도 책임 못 진다는데,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머리를 맞댄 거지요. 그때 신협과 생협을 비롯한 4개의 경제협동공동체를 세운다는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달동네 330명 3년 걸려 출자금 3억 ­
신협의 설립출자금이 최소 3억원인데, 가난한 달동네에서 어떻게 거금을 모았나요?

“출자금 모으는 데에만 3년 걸렸습니다. 동네마다 출자위원을 정해서 매일 바구니를 들고 다녔습니다. 천원이라도 생기면, 출자금으로 적립하도록 했지요. 330명이 그렇게 3억을 모아, 1997년에 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955개 신협이 있지만, 우리처럼 고리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자는 의지로 만들어낸 신협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초대 이사장으로 논골신협의 초기 10년을 이끌었으며, 올해 다시 이사장으로 돌아왔다.

유 이사장은 신협의 서민금융 역할을 강화하고 사회적경제네트워크의 금융 허브 구실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협동조합기본법 시대는 건강한 서민금융을 육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서민들에게 건강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이 구멍나 있잖아요. 신협이 서민금융의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과도한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러자면 금융당국이 먼저 신협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신협은 다른 금융’이고 ‘진정한 서민금융’라는 사회적 인식을 뿌리내리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자활공제사업도 신협 길 터줘야
“서울의 동자동사랑방, 원주의 갈거리사랑촌이나 전국의 자활공제조합들도 옛날 우리가 논골신협을 설립하기 전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푼돈을 적립해 수백만원의 소액대출을 제공해요. 건강한 서민금융의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이런 곳이 신협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신협 설립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앞으로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이 많이 생겨나면서, 민간의 자발적인 소규모 자활공제사업도 빠르게 확산될 겁니다. 하지만 법 테두리 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협동조합기본법에서도 금융은 제외했고요. 이제 서민금융 육성을 위해서도 이런 것들을 잘 보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신협으로 편입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직장 등의 단체신협은 지금 규정으로도 인가를 내줄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신협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서민금융의 중추 구실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금융당국이 가져야 합니다.”

정책 총괄할 협동조합청 설립을
유 이사장은 서민들에 대한 신용대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서민신용보증기금을 신설하고 새희망홀씨대출과 미소금융 등의 서민금융 지원창구를 신협으로 일원화할 것을 제안했다. 여러 부처에 나뉘어 있는 협동조합 정책을 총괄하는 협동조합청의 설립 필요성도 제기했다. 금융당국의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체계적인 협동조합금융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기 위한 방책이다. “신협에 대해서는 은행과 차별적인 감독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협동조합이라는 서민금융의 특수성을 고려해야지요. 신협에 대한 감독을 느슨하게 해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감독은 엄격하게 하되 서민금융을 위축시키는 영업 규제를 풀라는 것이지요.”

신협의 두번째 중요한 역할, 곧 지역사회 사회적경제네트워크의 금융지원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구체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유 이사장은 이를 위해 신협을 ●사회적경제진흥센터로 지정하고 ●사회적 경제 특화금융기관으로 육성하며 ●사회투자기금 운용기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밝혔다.

“협동조합들에 대한 교육과 경영컨설팅 등을 수행하는 사회적경제진흥센터로 신협중앙회를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단위신협을 사회적 경제 특화금융기관으로 지정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 같아요. 신협에서 협동조합 등에 대한 대출과 출자를 할 수 있도록 여신 규제도 풀어야지요.”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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