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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지역경제 ‘숨통’에서 이젠 공동체 지탱의 주역으로

등록 2012-05-08 16:08

영국 협동조합기업 허브는 협동조합을 인큐베이팅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고 있다. 사진은 혁신적인 신생 협동조합기업 ‘폭스 앤드 하운즈’(왼쪽 사진)와 ‘체비엇 케어’. 협동조합기업 허브 웹진
영국 협동조합기업 허브는 협동조합을 인큐베이팅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고 있다. 사진은 혁신적인 신생 협동조합기업 ‘폭스 앤드 하운즈’(왼쪽 사진)와 ‘체비엇 케어’. 협동조합기업 허브 웹진
주목받는 영국 ‘협동조합기업 허브’
영국 동북쪽 노섬벌랜드 카운티의 작은 농촌마을 울러에 ‘체비엇 케어’라는 작은 돌봄협동조합이 생겨난 것은 2011년 초였다. 노섬벌랜드 지방정부가 돌봄사업 예산을 삭감하고 명예퇴직을 권고하자, 서비스를 담당하던 직원들이 자력으로 협동조합기업을 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노인들의 집을 찾아 간호하고 일을 거들고 잔심부름과 말동무에 이르기까지, 돌봄 서비스는 고령화된 작은 마을에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최근 들어 공동체에 기반한 작은 협동조합 기업들이 영국에서 많이 생겨나고 있다. 체비엇 케어의 돌봄 서비스에서 도서관 운영, 마을 술집(퍼브), 자전거 가게, 꽃집에 이르기까지 사업분야도 전방위이다. 영국의 ‘협동조합기업 허브’는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이들 신생 협동조합들의 산파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주민, 지방정부, 전문가들과 다각협력

“저희가 돌보던 몇몇 노인은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지요. 그분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저희들의 도움이 절실해요. 그래서 우리 힘으로 협동조합기업 체비엇 케어를 세웠습니다.” 체비엇 케어 협동조합 결성의 주인공인 마리 퍼비스와 4명의 동료 조합원들은 마을 주민들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지역 보건의, 간호사, 물리치료사들과 다각적으로 협력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이제는 지방정부의 피고용자가 아니라 스스로 사업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협동조합기업 체비엇 케어의 주인으로 마을 노인들의 몸과 마음을 쓰다듬고 있다.

런던의 ‘라이브러리 협동조합’은 도서관 운영을 지원하는 노동자협동조합이다. 도서관에서 필요한 물품을 파는 원스톱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윤리적인 도서관 운영의 실질적인 노하우를 제공하고 있다. 4명의 협동조합원은 뜻을 함께하는 사서들과 협력해 협동조합 방식으로 공공도서관을 재건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도서관 운영을 위한 무료 소프트웨어 공급에도 힘을 쏟고 있다. 무료 소프트웨어는 다른 소프트웨어협동조합과 공동작업의 산물이다.

일반 기업이 포기한 사업체 떠안기도

일반 기업이 포기한 지역공동체의 작은 사업체를 주민들이 세운 협동조합기업에서 떠안는 사례들도 생겨나고 있다. 시골마을 에너데일 브리지의 ‘폭스 앤드 하운즈’라는 퍼브(영국의 대중 술집)가 대표적인 사례다. 민간에서 운영하던 우체국과 판매점, 버스업체에 이어 퍼브까지 폐업이 이어지자, 2010년 12월 에너데일 브리지의 지방정부가 지역공동체의 허브 구실을 하는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주민들은 열흘 만에 그 계획을 승인했고, 주민 조합원 182명이 8만3000파운드(약 1억5000만원)의 출자금을 모았다. 폭스 앤드 하운즈가 공동체의 구심점인 협동조합기업으로 재탄생한 것은 2011년 4월이었다.

작지만 강한 영국의 협동조합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2010년 영국 협동조합기업들의 평균 성장률은 4.4%로 영국 전체의 경제성장률(1.3%)을 크게 웃돌았다. 협동조합이 고만고만한 역할을 하는 비주류 경제의 일부라는 세간의 고정관념을 돌려놓을 수 있는 결과였다.

협동조합기업이 협동조합기업 육성

특히 공동체를 지탱하는 영국 협동조합기업들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그 산파 노릇을 한 ‘협동조합기업 허브’(The cooperative enterprise hub)의 존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체비엇 케어, 라이브러리 협동조합, 폭스 앤드 하운즈 같은 혁신적인 신생 협동조합들은 협동조합기업 허브의 도움이 없었다면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어려웠을 것이다. 협동조합기업 허브는 협동조합 등록 절차부터 협동조합 방식의 자금조달 방안, 사업계획 수립에 이르기까지 협동조합기업을 인큐베이팅하고 지속가능성을 지탱하는 ‘허브’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협동조합기업 허브라는 아이디어는 500만 조합원이 소속된 영국의 최대 소비자협동조합인 ‘코오퍼러티브 그룹’(The Cooperative Group UK)의 ‘작품’이다. 2009년에 출범한 코오퍼러티브 그룹의 협동조합기업 허브는 지금까지 521개 협동조합기업에 설립 및 전환과 관련한 교육·훈련을 제공했으며, 165개의 협동조합에는 지속가능한 성장 프로그램을 제공해왔다. 세계협동조합의 해인 올해에는 ‘협동조합의 르네상스’를 구현하자는 꿈을 꾸고 있다.

코오퍼러티브그룹의 ‘르네상스’ 구상

코오퍼러티브 그룹은 이를 위해 올해부터 3년 동안 각 협동조합기업들의 이익금 일부를 갹출해 750만파운드(약 14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한 바 있다. 저금리 대출로 신생 협동조합의 설립과 기존 협동조합의 발전을 실질적으로 지원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협동조합기업 허브는 △사회적·윤리적 기여 △젊은이들의 활동 고양 △환경 보호와 공동체 발전 등의 가치를 구현하는 협동조합들을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지역공동체의 필요에서 비롯된 사회, 문화, 경제적 기업활동을 ‘협동조합 간의 협동’으로 풀어나가는 좋은 본보기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협동조합을 자유롭게 세울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됐다. 올 연말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하면 크고작은 협동조합이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협동조합의 불모지에서 실험적으로 내딛는 많은 시도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건강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는 지극히 불투명하다. 협동조합끼리 서로 협동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한국형 ‘협동조합기업 허브’의 탄생이 요구된다.

김현대 선임기자, 김영미 아이쿱생협 대외협력팀 주임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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