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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뭉치면 산다…사회적 약자의 ‘협동조합기업’ 봇물 조짐

등록 2012-03-16 14:49

[헤리리뷰] 스페셜 리포트
사회적 경제 개막 앞둔 협동조합기본법 시대
12월부터 5명이상 모이면
누구든지 조합 설립 가능
내년이면 8천곳 이를수도
# “삼성전자 갤럭시에스(S)2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회사원 김서민씨는…” 2월13일치 <한겨레>의 재벌개혁 기사 첫머리다. 김씨의 그날 아침은 씨제이(CJ)의 햇반과 제일모직의 로가디스 정장, 롯데의 레쓰비 캔커피로 시작해, 출근길에 현대로템의 지하철과 에스케이텔레콤의 통신망을 이용하고, 사무실의 삼성전자 컴퓨터 켜기로 이어진다. 김씨의 아내 또한 재벌 기업에서 만든 청소기, 자동차, 주유소, 음식점, 커피점, 신용카드와 대형마트, 그리고 택배회사에 포위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재벌 사업망에 포위된 우리의 일상

지난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만난 수사네 베스트하우센은 입주자 12명과 주택협동조합을 결성해, 경매로 넘어가게 된 아파트를 직접 인수해 살고 있었다. 수사네는 주택 말고도 생협, 은행, 보험, 박물관 등 모두 5개의 협동조합에 가입해 있었다. 스페인의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가 협동조합인 것이 놀랍다고 했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덴마크의 스포츠클럽은 거의 예외없이 협동조합”이라고 말했다. 수사네가 이용하는 스포츠클럽이 2개이니, 그것까지 치면 그는 모두 7개 협동조합의 조합원이었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살고 있는 교민 이현숙씨는 ‘코프’(COOP)에서 시장을 본다. ‘코프’는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이탈리아의 최대 소매기업이다. 볼로냐에서는 가장 큰 급식업체(캄스트)도, 낙농업체(그라나롤로)도, 건설업체(치페아)도 모두 협동조합이었다. 고급 유치원과 노인 돌봄센터, 그리고 시내 중심의 박물관과 연극단 또한 협동조합 간판을 달고 있었다.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이제 우리도 5명만 모이면 자유롭게 협동조합 기업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실제 법 발효는 올해 12월부터이나, 벌써부터 협동조합 기업들이 봇물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내년까지 최대 8000개 정도의 협동조합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한다.

# 1500일 이상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재능교육의 학습지교사들.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른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오히려 협동조합 결성의 좋은 토양으로 주목받는다. 농협경제연구소의 신기엽 경영연구실장은 “학습지교사와 택배기사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이제 자력으로 협동조합 사업체를 꾸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스스로 협동조합 기업을 세울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재능교육 교사들이 공동출자로 협동조합 기업을 세우고 ‘투쟁의 자산’을 사회적 신뢰로 승화시켜낸다면, 기존의 ‘주식회사 재능교육’을 능가하는 사업체로 발돋움하지 못하란 법이 없다는 것이다.

청소·돌봄쪽 이미 자생력 갖춘 곳도

가장 많은 협동조합 출범이 예상되는 분야는 청소와 돌봄 쪽이다. 법적 근거가 없어 협동조합 간판을 달지 못했을 뿐, 많은 사업체들이 이미 협동조합 방식으로 조직과 사업을 운영해 왔다. 대안기업연합회라는 연합조직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청소용역 사회적기업 ‘함께 일하는 세상’처럼 50억대 이상의 탄탄한 매출을 올리는 곳도 있다.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횡포에 시달리는 동네슈퍼 상인들 또한 협동조합으로 사업하기에 적합한 잠재여건을 갖춘 자원이다. 전국 또는 특정 지역의 영세한 동네상인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마케팅과 구매를 전담하는 협동조합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동네가게 주인들은 코나드라는 협동조합을 세워 전국 소매업계를 통틀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재개발 추진부터 이후의 브랜드 및 고객관리 업무까지 전담하는 ‘남대문시장 협동조합’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는 다양한 생활협동조합 추진 움직임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인천에서는 지난해 5월 통신소비자생활협동조합을 결성하겠다는 준비모임이 결성돼 착실하게 회원을 늘려 나가고 있다.

통신 3사와의 공동구매 및 직거래 등을 통해 지금의 독점적 통신비를 30~40% 끌어내리겠다는 것이, 통신소비자생협 추진의 목표이다. 서울의 학교 건물 옥상에 햇빛발전기를 설치해 공급하는 서울햇빛발전협동조합 결성 작업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SSM 횡포에 맞설 유력한 대항무기

이밖에 회원들끼리 자동차를 나눠 타는 ‘카 셰어링’ 사업체들이 협동조합 기업 전환을 추진하고, 가난한 음악가들끼리 공동출자한 자금으로 소규모 음반제작 지원사업 등을 벌이는 서서울음악생활협동조합이라는 모임도 작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협동조합 방식의 상조사업체인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을 이끌어가는 박승옥 대표 같은 이는 생태건축가들과 함께 에너지생태건축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최근 충남 공주에서 ‘마곡 사람들’이라는 귀농자들의 협동조합 공동체를 조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햇빛발전협동조합 또한 박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 재벌 기업의 상품들에 철저히 속박된 우리의 경제생활에 ‘균열’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 소비자와 노동자들도 볼로냐나 코펜하겐에서처럼 스스로 사업체를 세워 독과점의 횡포에 맞서고, 그런 협동조합 기업들이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는 세상을 열어갈 수 있을까?

유럽의 도시에서처럼 우리의 협동조합 기업들이 대기업 반열을 다투는 모습을 당장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우리의 막강한 재벌 기업들은 세계 10위권 경제의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거미줄 사업망을 촘촘하게 뻗쳐놓았기 때문이다.

한국협동조합연구소의 박범용 팀장은 “기본법 제정 초기에는 경제·사회·문화적 약자들이 기존 시장이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자생력을 강화하는 식의 협동조합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영세상인과 소상공인 ●자활공동체와 돌봄사업 ●특수고용직 노동자 ●초기 자본 동원이 어려운 청년 창업 ●낙후지역 주민의 사회안전망 구축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보건의료, 공동육아, 문화예술 분야에서 협동조합 설립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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