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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협동조합기업과 주식회사 균형 이뤄야 건강한 경제”

등록 2011-10-31 17:55수정 2011-10-31 18:14

세계적인 관광지인 영국 셰익스피어 생가 마을의 생협은 생필품도 팔고 우체국 구실도 한다.
세계적인 관광지인 영국 셰익스피어 생가 마을의 생협은 생필품도 팔고 우체국 구실도 한다.
99%를 위한 성남시의 특별한 실험
“은행계좌 폐쇄하고, 신협으로 옮기자!”

최근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서 터져 나온 구호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이 캠페인을 제안한 크리스텐 크리스천(27)이라는 여성은 아예 11월5일을 ‘계좌 전환의 날’(Bank Transfer Day)로 선언했다. 그날 대형은행에서 예금을 한꺼번에 빼내 자기 지역의 신협(신용협동조합)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이미 2만명 이상이 동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와 달리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신협이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우리 동네 은행’, 99%를 위한 믿음직한 금융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협중앙회의 임우택 홍보팀장은 “우리나라 대다수 은행은 50% 이상의 주식을 외국계 자본이 소유하고 있고, 그들의 과도한 배당 요구가 문제되지만, 협동조합인 신협은 조합원이 1인1표를 행사해 대주주의 전횡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의 일부 신협들이 이런 원칙에 충실하지 않아 고객 불신을 자초하는 것은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신협을 비롯한 협동조합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1%의 탐욕이 빚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당시 세계의 여러 협동조합은행과 신협들은 금융위기에 흔들리지 않았고, 평소의 대출거래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예금을 늘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이란 평가를 받았다. 세계협동조합연맹의 자료에서도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을 받은 곳이 거의 전무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유럽의 도시와 마을을 다니다 보면 협동조합 가게나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럽의 도시와 마을을 다니다 보면 협동조합 가게나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협동조합, 위기극복 대안으로 부상

선진국의 대다수 소비자 생협들에도 금융위기는 기회로 작용했다. 스위스와 이탈리아 등지의 여러 생협들은 가격을 낮춰 물가안정에 기여했고, 조합원 고객을 늘려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을 전후해서도 협동조합 기업들은 도약의 경험을 했다.

영국 스털링대학의 존스턴 버챌 교수는 “투자이익을 기대하는 외부 주주들의 자본주의 기업과 달리, 협동조합은 직접 물건을 사고파는 조합원들이 소유한 기업”이라며 “협동조합의 건강성과 경쟁력은 바로 조합원이 고객이고 출자자라는 소유구조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의 물건을 직접 사고파는 출자 조합원들이 고객이고 그들의 편익 증대가 목적이기 때문에, 조합원(고객)들과 무관한 월스트리트의 파생금융상품에 목돈을 맡기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위스의 최대 고용 기업으로 8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소비자생협 미그로는 아예 글로벌 전략조차 갖고 있지 않다. “조합원 고객들이 모두 국내에 있는데, 글로벌 전략을 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네덜란드 최대 은행인 라보방크 또한 가계와 중소기업 및 농업부문의 국내 금융이 절대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외부 투자자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기업이었다면, 더 많은 투자수익을 좇아 일찌감치 글로벌 무대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버챌 교수는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협동조합은 가장 지속가능한 기업 형태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고객=출자자’ 구조가 경쟁력 토대

협동조합 기업들은 선진국 경제에서 단순한 대안에 머물지 않고 있다.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무게 또한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금융 쪽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져, 유럽에서는 협동조합 은행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은행의 20%를 넘어서고 있다. 소매업계에서는 소비자 생협들이 선두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다. 스위스의 미그로와 코옵이란 두 생협은 업계 1, 2위로 국내 소매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이탈리아 등지에서도 생협 기업들이 예외없이 소매업 선두권에 올라있다. 농축산 부문에서는 협동조합 기업들이 아예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협동조합의 기운이 싹트고 있다. 승자 독식의 자본주의 경제를 극복하려는 여러 혁신가들의 도전과 실험의 산물이다. 김기태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은 “협동조합이 99%를 위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기업이란 인식이 이제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일찌감치 신협과 생협의 뿌리를 내려온 성남 지역에서 협동조합과 유사한 시민주주기업의 실험을 시작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2대 생협인 ‘코옵’(COOP) 로고를 새긴 자전거 트레일러를 만났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2대 생협인 ‘코옵’(COOP) 로고를 새긴 자전거 트레일러를 만났다.
‘사회적책임’ 소비자 많을수록 성장

풀뿌리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을 이끌어온 혁신가들은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에 힘을 모으고 있으며, 유엔이 정한 내년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앞두고 다양한 협동조합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공동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은 협동조합 경제 대안을 모색하는 당 특위를 추진하고 있고, 손학규 대표가 협동조합기본법 입법발의에 적극 나섰다. 여러 생협단체들은 박원순 신임 서울시장 쪽에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조직 신설을 제안했으며, 박 시장도 이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의 스테파노 차마니 교수는 “협동조합 기업들이 자본주의 기업들과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래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며 “이기심에서 출발하는 자본주의 기업 말고 더불어 살아가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기업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학교교육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생산과정에 민감한 사회적책임소비자들이 많아질수록, 협동조합은 힘있게 성장할 것”이라고 미래를 낙관했다.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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