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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자유·민주주의 소중히 여길수록 협동조합도 활발”

등록 2011-07-05 14:28

[인터뷰] 협동조합 경제의 석학 스테파노 차마니 교수
협동조합 경제의 세계적 석학인 스테파노 차마니(Stefano Zamagni·사진) 교수를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의 볼로냐대학 연구실에서 1시간 남짓 만났다.

볼로냐대학은 1088년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차마니 교수는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미래로 갈수록 협동조합 기업들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극복 일등공신

인구 430만의 에밀리아로마냐가 경제부흥을 이루는 데 협동조합이 어떤 역할을 했나?

“195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못사는 지역이었다가, 지금은 유럽에서 잘살기로 손가락 꼽히는 곳이 됐다. 지금 에밀리아로마냐 총생산의 30%가 협동조합 경제에서 나온다. 볼로냐와 이몰라 같은 도시는 45%에 이른다. 시민들도 협동조합 좋은지 다 안다. 좋은 게 없다면 왜 조합원이 되겠나? 우선 싼값에 물건을 살 수 있다. 연말이면 배당을 받는다. 그러고도 이윤이 남으면 조합에서 사회적으로 유용한 데 쓴다.”

2008년의 금융위기 때도 이탈리아 협동조합 기업들은 위기를 잘 극복했다고 들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 첫째는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은행 중에 망한 곳이 없다. 둘째, 협동조합 직원 중에 한 사람도 해고되지 않았다. 셋째, 임금도 종전과 똑같은 수준으로 지급받았다.”


이탈리아에서도 에밀리아로마냐주의 협동조합 경제가 특히 왕성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협동조합 운동은 이탈리아 전국에 고루 퍼져 있다. 에밀리아로마냐에서는 특히 집중화된 양상을 보인다. 자유를 갈망하는 에밀리아로마냐의 뿌리깊은 문화적 특성이 자연스런 토양이 됐을 것이다. 1237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농노제를 폐지하는 사회계약을 이뤄낸 곳이 바로 에밀리아로마냐이다. 사회주의 정당과 가톨릭 교단에서도 협동조합 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볼로냐 광장의 시청 벽에는 2차대전 때 파시즘과 전쟁을 벌이다 목숨을 잃은 수많은 군인과 시민들의 사진 수천장이 걸려 있다. 자유를 갈망하는 볼로냐의 단면을 보여준다. 1980년 폭탄테러로 85명이 숨졌던 볼로냐 중앙역의 시계는 지금도 테러 시각인 10시25분에 멈춰 서 있다.

이탈리아 강점은 전국 네트워크

협동조합들이 서로 협동해서 사업을 끌어나가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레가코프를 비롯해 5개의 전국협동조합연맹 조직이 잘 정비돼 있다. 작은 협동조합들은 상위 연맹에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연맹에서는 회원 협동조합들을 지원하고 통제한다. 그런 네트워크가 잘돼 있다는 점이 이탈리아와 다른 나라의 차이점이다. 의회에서도 법으로 뒷받침했다.”

주식회사도 사회책임경영을 잘하면 협동조합과 비슷해지는 것 아닌가?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은 자선이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협동조합을 따라하는 것이고, 이미지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원칙에서 큰 차이가 있다. 협동조합에서는 모두가 동등하고, 민주주의가 출발점이다. 어떻게 같을 수 있겠나?”

한국 경제는 철저히 대기업과 주식회사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해 조언해 달라. “라자냐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 먼저,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학교와 언론에서 협동조합을 가르치고 문화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그다음, 법제도로 뒷받침해야 한다. 유럽연합에서도 2009년에 공동의 협동조합법을 제정했다. 협동조합은 상대적으로 잘사는 지역에서 활발하다. 가난한 농민들 잘살게 해보자고 협동조합을 외치는 것은 이제 한계가 있다. 좀더 풍요로운 삶을 제시해야 한다. 협동조합 하면 웰빙이 온다고 외쳐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면 협동조합을 하게 될 것이다.”

협동하는 경쟁이 좋은 결과 낳아

한국에서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협동의 인식도, 협동하는 문화도 약하다. “경쟁에는 두가지가 있다. 지위(positional) 경쟁과 협동(cooperative) 경쟁이다. 한국 젊은이들이 왜 행복하지 않은가?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경쟁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쟁은 단기적으로 괜찮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협동하는 경쟁이 더 나은 결과를 낳는다. 어떤 것을 선택하겠나? 서로 도와가면서 행복하게 살지 않겠나?”

차마니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북한 이야기를 꺼냈다. “북한에서 협동조합을 하도록 김정일을 설득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이 협동조합을 좋아하지 않지만, 미래에 한국이 통일되면 협동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때까지 남한이 북한을 도와야 한다.”

“자본주의와 시장 동일시하는 건 오류”

차마니 교수는 지난해에 펴낸 자신의 저서 <협동조합 기업>에서 자본주의경제와 시장경제를 동일시하는 것이 대단히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시장 이외에 경제적·사회적 약자에게 부를 재분배하는 특성을 지닌 시민시장(civil market)이 존재한다는 논리를 편다. 차마니에 따르면, 주주의 사적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협동조합은 바로 시민시장의 영역에 속한다. 또 협동조합은 시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조화를 이룬다. 차마니는 협동조합 기업들이 (자본주의 주식회사와) 시장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지기 위해서는 세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 이기심 말고도 경제적 동인이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세계는 시장의 확산이 사회병리의 해결책이라는 논리와 시장은 강자의 약자 지배라는 반대논리 두가지만 가르쳤다. 둘째, 상품 자체의 특성만이 아니라 상품의 생산과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민 소비자들, 곧 사회적 책임 소비의 등장이다. 시민 소비자들이 많아질수록 협동조합은 힘있게 성장한다. 정치적·제도적 장치는 셋째 조건이다. 협동조합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기업들이 시장에서 (자본주의 주식회사와) 똑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사회질서가 뒷받침돼야 한다.

볼로냐(이탈리아)/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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