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일주일 뒤인 지난 8월15일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북서부 라하이나 지역에서 불타버린 건물과 차량 잔해가 방치돼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불평등은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핵심 열쇳말이다. 우리 앞에 놓인 많은 난제들, 고통, 불안의 기저에 불평등이 있다. 소득과 자산 등 전통적 의미의 불평등이 여전한 가운데 불평등 의제는 공정성 담론에 부딪혀 길을 잃기도 하고, 기후위기, 고령화와 돌봄, 인공지능 등 급격한 변화에 직면해 뒤엉키고 뒤틀리기도 한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원장 이봉현∙HERI)은 상생과 연대를 위한 대안 공론장을 지향하는 소셜코리아(운영위원장 윤홍식)와 함께 ‘다시, 한국의 불평등을 논한다’ 기획을 시작한다. 한국의 불평등 논의는 왜 견고히 이어지지 못하고 부침을 거듭하는지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편집자주
2018년 프랑스의 노란조끼 운동과 2023년 네덜란드 선거 이변
2018년 프랑스 마크롱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처한다면서 40억 유로(약 5조6800억 원) 규모로 탄소세를 인상했다. 동시에 부자들에게 매겼던 부유세를 폐지했는데, 그 규모도 대략 40억 유로 정도였다. 문제는 이 세제 개편으로 인해 프랑스 최상위 부유층 1퍼센트는 감세효과로 소득이 6퍼센트 이상 높아졌지만, 하위 20퍼센트 서민들은 주로 탄소세 때문에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자 프랑스의 저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정부가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준 만큼 자신들에게 탄소세 명목으로 세금을 더 걷어가려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탄소세 중에서도 이른바 ‘부자들의 연료’인 항공연료는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민들은 ‘사회정의’를 내걸고 ‘탄소세 동결 청원’운동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노란조끼 운동’으로 잘 알려진 대규모 저항이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탄소세 인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 3월 네덜란드로 무대를 옮겨보자. 3월15일 실시된 네덜란드 지방선거는 충격적 이변이었다. 신생정당인 ‘농민-시민운동’(일명 농민당)이 무려 20퍼센트 가까이 득표하며 일약 제1당이 된 것이다. 이 배경에는 네덜란드 정부의 축산정책이 있었다. 네덜란드 정부가 유럽연합의 제한치를 초과하고 있는 질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기 위해 가축 수를 최대 3분의 1까지 감축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농부들은 친환경 전환을 위해 자신들이 희생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이런 농민들의 불만을 포퓰리즘적으로 이용한 농민당이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이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기후위기와 환경을 고려했던 정부의 정책이 특히 서민들의 생계와 충돌할 수 있고, 이 때문에 서민들이 정부의 기후대응이나 환경정책에 반대해 저항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후재난이나 환경파괴가 중산층이나 상류층보다 오히려 서민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기후대응과 친환경정책에 반대하는 이와 같은 역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경제적 불평등이 환경불평등을 결정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기후 부정의’ 문제가 등장한다. 우리는 흔히 기후위기와 생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1/N씩 나눠서 탄소발자국을 줄이거나 1회용 용기 사용을 절제하자는 식의 캠페인에 익숙하다. 그러나 국가 사이에서는 물론 한 사회 안에서도 기후위기의 책임이 모두 같지는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 사례를 살펴보자. 세계불평등랩(Global Inequality Lab)에서 2021년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서 소득상위 1퍼센트와 하위50퍼센트 사이의 소득격차는 약 48배쯤 되었다. 그런데 이들 소득계층에 따라 탄소배출을 얼마나 다르게 하는지 그 격차를 따져봤더니, 상위 1퍼센트 부자는 1년에 탄소배출을 무려 180톤을 배출했고, 상위 10퍼센트 상류층은 54.5톤을 배출했다. 반면 인구 절반인 하위 50퍼센트 서민들의 1년 탄소 배출량은 고작 6.6톤이었다. 소득 상위 1퍼센트와 하위 50퍼센트 사이의 탄소배출 격차가 약 27배쯤 되었다는 얘기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적 소득 불평등이 환경적 불평등, 즉 탄소배출 불평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유층들이 압도적으로 기후위기에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직관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부유층은 압도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넓은 주거공간과 각종 가전기구를 사용하며 비행기와 자가용을 포함하여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이동수단을 주로 이용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큰 식단에 의존하고 과다한 소비를 한다.
따라서 기후대응을 위한 정책도 이를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1인당 한 해에 평균 14.7톤 탄소를 배출하므로 2030년까지 국가 전체 탄소 배출을 절반 감축한다고 하면 국민 1인당 평균 약 7.4톤까지 감축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현재 한국인 절반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6.6톤에 불과해 2030년 목표보다도 적다. 논리적으로는 더 줄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반면 상위 1퍼센트는 180톤을 배출하므로 무려 95.8퍼센트에 해당하는 172.7 톤을 감축해야 하고 상위 10퍼센트는 86.2퍼센트를 줄인 47.2톤을 감축해야 한다. 중위 40퍼센트 중산층들은 대체로 절반 정도 줄이면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런 방식에 따라 국가적으로 탄소 배출을 감축해야 국민들이 불만 없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똑같이 1/N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이에 대해 환경시스템학 전문가 얼 엘리스(Erle Ellis)는 기후위기를 일으킨 원인에 대해 인류 전체를 뭉뚱그려 비난하면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류가 유발한 환경변화는 사회적인 과정이다. 형광등 스위치를 켜는 것은 한 개인이지만 그 불이 계속 켜질 수 있게 하는 것은 사회 전체다. 사람마다 환경을 변모시키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과정에서 유래하는 사회간 불평등, 그리고 사회내 불평등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사회적 불평등을 감안하여 기후대응을 하자는 ‘기후정의운동’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과거 노동조합에서 환경적 대응과 일자리 안전을 동시에 해결하자며 제안되었던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대폭 확장하여 불평등과 기후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대표적으로 캐나다 저널리스트이자 환경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은 정의로운 전환 원칙을 폭넓게 재해석한다.
그에 따르면 정의로운 전환원칙을 5가지로 유형화시키 수 있다. 첫째, 재생에너지 분산성 특징에 맞게 다양한 소유 형태로 전환하는 ‘에너지 민주주의(energy democracy)’ 원칙, 둘째,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현장 지역 주민들과 공동체들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최전선 공동체 우선(front line first)’ 원칙, 셋째, 탄소집중도가 낮고 삶을 위해 필수적인 돌봄 일자리를 위해 더 많이 투자하고 생활임금을 보장해주는 ‘돌봄 일자리가 기후 일자리(care work is climate work)’라는 원칙, 넷째, 기존 탄소집약적 산업의 축소로 인한 일자리 상실과 생존 위협에 대해 확실히 책임을 지는 ‘한 사람의 노동자도 뒤쳐지지 않게(no worker left behind)’ 배려하는 원칙, 그리고 다섯째, 전환 과정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을 오염자와 과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오염자 부담(polluter pays)’ 원칙이 그것이다.
물론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대응을 동시에 풀어나가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세계불평등랩에서 탄소배출 불평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경제학자 뤼카 상셀(Lucas Chancel)은 이렇게 진단한다. “이 두 목표 중 어느 한쪽을 앞세워 다른 쪽을 희생해서는 안된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환경보호는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고 그 모든 형태가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중립적이지는 않다. 어떤 환경 정책은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적어도 한동안은,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역으로, 빈부격차 해소 정책이 환경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1.5°C 라이프스타일’ 안에 들어가기
한편,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사회안전망 강화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과시적 소비나 반생태적 삶의 방식을 억제시킴으로써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는 구상의 하나로 ‘1.5°C 라이프스타일’ 만들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데 이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 ‘1.5°C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과도한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정부는 규제와 과세, 인센티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운송과 교통 영역에서 개인 제트기나 호화 요트, 내연기관 자가용, 단거리 비행, 비행 마일리지 등을 점차로 줄이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그 사례다. 또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2025년부터 내연기관 보트를 금지하고 내연기관 오토바이와 자가용은 2030년부터 금지하겠다고 2019년에 선언했다. 또한 영국 웨일즈 정부는 2021년에 모든 신규 도로 건설 프로젝트를 동결하고 대신에 대중교통에 펀딩하기로 했다. 프랑스 정부는 2시간 반 미만 여행 거리 정도의 단기 국내선 비행기 운행을 금지하고 대신 철도 여행을 장려하기로 했다.
한편 1.5°C 라이프스타일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도록 유도하는 것과 동시에 정부는 기본적인 수준의 필수 소비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서비스를 공적으로 공급해줘야 한다. 즉, 더 나은 선택들, 최상의 철도와 공유 전기차, 자전거와 버스와 같은 ‘지속 가능한 선택지’를 더 넓게 열어서 모두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감당 가능한 일상적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삶에 필수적인 의료, 교육, 주거, 영양, 디지털 접근과 교통을 모두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여기에 포함된다.
개인들은 과도한 소비나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생활을 피하고, 적정 필요 수준의 생활방식을 정착시키고, 공공에서는 개인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보장하기 위한 정책을 제공함으로써, ‘사적 충분성과 공적 풍요로움(Private Sufficiency, Public Abundance)’을 만족하고 기후에 안전한 미래로 갈 수 있다. 이처럼 불평등을 줄이면서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완화시키는 정책은 이미 많은 공론장에서 논의되고 있고, 부분적으로 실천되고 있다. 만약 부족한 것이 있다면 정치적 의지이지 대안의 부재는 아니라는 말이다.
김병권 녹색전환연구소 자문위원
기후경제와 디지털경제 정책연구자다. 2019~2022년까지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 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정의당의 기후정책과 그린경제, 디지털경제 정책 설계를 책임졌다. 사단법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으로 사회경제정책을 연구했고, 서울시 혁신센터장과 협치자문관 책임을 맡아 혁신과 협치 현장에 참여했다. 지은 책으로 『기후를 위한 경제학』, 『진보의 상상력』,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맞선 그린뉴딜』, 『사회적 상속』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