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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사는 곳도 생각도 다른 지구촌 3084명, 세계를 말한다

등록 2023-06-26 18:44수정 2023-06-26 23:41

25일 세계 최초 ‘더 월드 톡스’ 시도
생각이 다른 지구촌 3084명의 대화
6년 전 시작 ‘독일이 말한다’ 확대판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에서도 실험
25일(현지 시각) 러시아인 베타(왼쪽)와 팔레스타인인 아나스가 ‘더 월트 톡스’(세계가 말한다)에서 대화를 나눴다. 이들 포함 이날 116개국 3084명의 국적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만나 대화를 시도했다. <디 차이트> 제공
25일(현지 시각) 러시아인 베타(왼쪽)와 팔레스타인인 아나스가 ‘더 월트 톡스’(세계가 말한다)에서 대화를 나눴다. 이들 포함 이날 116개국 3084명의 국적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만나 대화를 시도했다. <디 차이트> 제공
베타는 29살이다. 이집트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그녀는 러시아인이다. 조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나라를 떠났다. 그녀의 양심이 더는 러시아에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나스는 27살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이다. 그의 부모는 수년 동안 이웃 요르단에 있는 난민 캠프에서 살았다. 이제 가족들은 카타르로 이주해 산다. 그는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둘 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비판한다. 하지만 모든 국가가 나서서 러시아를 제재해야 한다는 생각엔 엇갈린다. 난민 가정에서 자란 아나스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침략한 모든 나라가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베타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조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모든 나라가 나서서 러시아를 제재하는 것에 반대한다. 러시아 시민들만 고통스럽게 하는 제재는 푸틴의 손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본다.

두 사람의 차이는 난민 이슈에서도 이어졌다. 난민 가정 출신인 아나스는 모든 국가가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요르단이 그의 가족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삶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베타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집트에 이주민으로 사는 그녀는 자국민을 부양할 능력이 없는 나라에 난민을 수용할 의무를 부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적과 사는 나라 심지어 생각마저 다른 두 사람은 25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지구촌 116개 나라 출신 5100명이 신청한 ‘더 월드 톡스’(The World Talks, 세계가 말한다)를 통해 온라인으로 대화까지 나눈 한 쌍이다. 이들을 포함 실제 대화 참여자는 3084명이다. 아나스와 베타의 이야기는 다른 4명의 사연과 함께 독일 시사 주간지 디 차이트에 소개됐다.

25일 전세계 동시 실시한 ’더 월드 톡스’(세계가 말한다) 행사를 알리는 비영리법인 ’마이 컨츄리 톡스’의 누리집 갈무리
25일 전세계 동시 실시한 ’더 월드 톡스’(세계가 말한다) 행사를 알리는 비영리법인 ’마이 컨츄리 톡스’의 누리집 갈무리
아나스와 베타의 관점은 세상을 바라보는 데서도 차이를 드러냈다. 아나스는 지난 20년 동안 세상이 더 나아졌다고 믿지만 베타는 그렇지 않다. 베타는 조국이 같은 기간 점점 더 억압적인 국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비슷한 희망과 두려움을 공유하고 있었다. 둘 다 기후 변화에 우려를 나타냈고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평화를 염원했다.

이날 아나스와 베타가 참여한 세계가 말한다 행사를 주관한 비영리법인 ‘마이 컨츄리 톡스’(My Country Talks)의 실험은 국경을 초월해 다른 생각을 갖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날한시에 대화를 나누도록 기획됐다. 이 단체는 누리집에서 ‘세계가 말한다’(6월25일)를 기획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세계 모든 나라가 대화를 통해 사회를 분열시키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자는 취지다.”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이 서로의 관점을 교환하는 대화를 통해 편견을 깨고 공감하면서 공통의 가치를 찾으려는 시도인 셈이다. 이는 분열된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민간 차원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가 말한다의 연원은 디 차이트가 2017년 처음 시도한 ‘독일이 말한다’다. 이 언론사는 이후 여러 독일 매체와 협업해 수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독일이 말한다’로 확대했다. 동시에 이 모델을 마이 컨츄리 톡스를 기지 삼아 30개 넘는 나라로 확산했다. 누적으로 세계 25만 명의 사람들이 1대 1로 만나 서로의 관점을 교환하고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경험을 쌓았다.

대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화 참가 희망자들은 미리 준비된 10개 안팎 질문에 자기 생각을 밝히고 알고리즘에 따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과 짝짓게 된다. 두 사람은 온·오프로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맞춰 한 차례 대화를 나누게 된다.

25일 세계가 말한다 참가 신청자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난민 수용, 국가와 종교의 분리 등에 찬반을 묻는 것이었다.

비영리법인인 ‘마이 컨츄리 톡스’에 협력사로 참여한 전 세계 매체들 가운데 <한겨레>도 포함돼 있다. 마이 컨츄리 톡스 누리집 갈무리
비영리법인인 ‘마이 컨츄리 톡스’에 협력사로 참여한 전 세계 매체들 가운데 <한겨레>도 포함돼 있다. 마이 컨츄리 톡스 누리집 갈무리
이날 행사를 주관한 비영리법인 마이 컨츄리 톡스에는 독일의 디 차이트 등과 함께 한국에서 한겨레도 협력 언론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한겨레신문사는 오는 10월11일 열리는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독일이 말한다’ 한국판인 ‘한국이 말한다’(가칭)를 발표할 예정이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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