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의 급락 여파로 코스피가 어제보다 1.63% 내린 2063.30으로 거래를 마감한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명동 KEB하나은행 딜링룸에서 한 직원 너머로 전광판이 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계 각국 증시가 도미노처럼 쓰러지고 있다. 미국 주가가 떨어지면 다음날 아시아, 유럽 등의 주식시장이 차례로 급락하는 패턴이 이어진다. 세계 경제 불확실성 확대로 위험자산 기피현상이 퍼지면서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주식에 투자하는 글로벌 펀드자금이 이달 들어 북미에서 대규모로 유출됐고, 신흥국 시장에서도 7주 연속 투자자들이 돈을 빼면서 주가를 끌어내렸다. 2008년 이후 안전자산인 채권에서 위험자산인 주식으로 이동했던 글로벌 투자자금 흐름이 10년 만에 대전환의 길목에 들어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25일 아시아 주식시장은 전날 밤 미국 증시 폭락 여파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일본 도쿄 증시에서 닛케이지수는 3.72% 폭락한 2만1268.73에 장을 마감했고, 홍콩 항셍지수도 1.01% 떨어졌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2603.8)만 0.02% 올랐다. 앞서 미국 나스닥 지수는 24일(현지시각) 4.43% 폭락했다. 이는 2011년 8월 이후 최대치다. 한달 하락폭(-11.7%) 역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컸다. 다우지수는 2.41%, 에스앤피(S&P)500지수도 3.08% 떨어졌다.
■ 공포에 질린 글로벌 자금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함께 글로벌 자금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것은 공포다. 홍춘욱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경제지표는 잘 나오고 있는데, 2009년 3월에 바닥을 찍고 9년 이상 경기 확장을 하다보니 곧 이게 끝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투자자들이 하고 있다”며 “공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심리 위축을 부르는 사건은 많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대표적이다. 관세 부과액을 서로 높이는 등 두 나라는 확전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신동준 케이비(KB)증권 수석연구원은 “미-중 무역분쟁의 부정적 여파는 2019년 1분기에 집중될 것이다. 중국의 6%대 성장률이 위협받을 것이며, 국외 수익비중이 높은 미국 기업의 실적 우려와 미국 경제의 부정적 영향도 같은 시기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주요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무역분쟁이 장기화할 경우 아시아의 국내총생산(지디피·GDP)은 최대 0.9%포인트 하락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아이엠에프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최악의 경우 신흥국의 자본 유출 규모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예은 아이비케이(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 줄어드는 테크 낙관론 무역분쟁과 신흥시장 불안에도 미국 증시는 글로벌 위험자산을 받치는 보루였다. 이른바 팡(FAANG)으로 대표되는 미국 기술주는 증시를 끌고 올라왔다.
그러나 미국 기술주가 24일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의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날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대표 기술주인 아마존의 주가가 5.91% 하락했다. 애플은 3.42%, 페이스북은 5.41% 떨어졌고, 넷플릭스는 9.4%나 주저앉았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주가도 5.2% 떨어졌다. 주목할 것은 반도체 업체인 에이엠디(AMD)의 주가도 9.2%나 폭락했다는 점이다.
이들 아이티(IT) 기업의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부품인 반도체 업체의 업황에 대해 투자자들이 부정적인 전망을 보인 셈이다. 삼성전자의 주가(4만1000원) 역시 3.64%나 빠졌다. 오석태 소시에테제네랄(SG)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아마존이 수익을 내지 못해도 ‘테크 낙관론’이 힘을 발휘했는데, 낙관론에 의문이 생기다보니 반도체 업체들의 주가부터 먼저 하락하고 있다”며 “미-중 무역분쟁과 함께 아이티 업계 전반에 대한 불안감이 내년 초에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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