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가치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부양책 차질 등의 여파로 5개월째 내림세를 나타냈다.
달러는 31일(현지시각) 국제금융시장에서 1유로당 1.18달러로 거래돼 2년반 만에 가장 낮은 값(환율 상승)을 기록했다. 유로 대비 달러 가치는 이로써 올해 12% 떨어졌다. 또한 달러는 영국 파운드에 대해 1.32달러로 매매돼 지난해 9월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달러 약세는 ‘딕시 지수(달러 인덱스)’를 보면 좀더 포괄적으로 드러난다. 딕시 지수는 유로, 일본 엔화 등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 산정한 달러 가치를 지수화한 것이다. 이 지수가 7월 2.7% 떨어져 5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올 한해로는 달러 가치가 주요국 통화에 견줘 9% 낮아졌다. 1~7월 달러 가치가 이렇게 많이 떨어진 것은 1986년(-12.5%) 뒤로 처음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달러 가치는 2011년 이후 오름세를 보여왔다. 미국이 다른 선진국들보다 금융위기에서 일찍 벗어나고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인 게 주된 구실을 했다. 이는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선호로 이어져 달러 강세를 낳았다. 지난해 11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경기회복에 가속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달러 가치가 더 뛰었다.
하지만 올들어 달러 강세는 약세로 방향을 틀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한 세제 개혁과 재정지출 확대 방안 등이 이른 시일에 시행되기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런 부양책이 추진되면 성장률을 끌어올려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를 좀더 빠른 속도로 올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낳았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대부분 달러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난맥을 빚으며 기대가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계속 둔화 추세를 보여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신중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연준의 몇몇 고위 간부들은 물가 상황을 두고 우려하는 얘기를 하고 있고, 금융시장에서는 연내 추가 인상 가능성을 50% 미만으로 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이 애초 전망보다 나은 성장세에 힘입어 부양책을 줄여나갈 듯한 신호를 조금씩 보내는 것도 달러 가치를 낮추는 요인이다.
스위스 대형 은행인 크레디스위스는 얼마전 달러 약세가 상당기간 이어져 내년에는 1유로당 1.22달러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또 국제통화기금은 지난주 달러 가치가 10~20% 고평가돼 있다고 밝혔다. 그만큼 하락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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