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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미 인플레 감축법 전방위 대응…전망 밝지 않아

등록 2022-09-04 11:07수정 2022-09-04 11:13

“미국 국내 정치적 배경 띤 법”
범부처 대응에도 성과로 이어질지 미지수
8월 발효된 법을 개정?
배터리 광물·부품 요건 세부 지침에 기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후 정부 서울청사 별관 접견실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 면담을 갖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한미 공급망·산업 대화 등 양국 간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오후 정부 서울청사 별관 접견실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 면담을 갖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한미 공급망·산업 대화 등 양국 간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이달 유엔(UN) 총회 기간(18~20일) 중 미국을 방문해 상무부 장관 등 미국 정부 및 의회 관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한국산 전기차의 세액 공제 혜택을 제외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관한 논의를 위해서다. 오는 5~7일로 예정된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의 워싱턴 디시(DC) 방문 일정도 미 인플레 감축법 때문이다. 안 본부장은 미 무역대표부(USTR) 캐서린 타이 대표를 비롯한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 논의를 벌이기로 했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29일 산업부·기획재정부·외교부 실·국장급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대표단을 미국에 파견해 미 인플레 감축법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정부 대표단은 2박3일에 걸친 방미 기간에 미 무역대표부·상무부·재무부·국무부 등 관련 부처를 방문했다. 귀국길에 기자들을 만난 대표단의 안성일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은 “미국의 각 부처가 이 문제를 공유해 한국의 우려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며 “우리의 상황과 기업 입장, 국회 분위기, 한국민들의 정서 등을 잘 전달했고, 미국 측은 그 심각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미 인플레 감축법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을 반장으로 하는 ‘정부합동대책반’이 꾸려져 있다. 안 본부장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외교부·기획재정부 등 관계 부처와 개최한 긴급 통상추진위원회를 주재하면서 “오늘 위원회를 계기로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정부합동대책반을 가동하고 수시로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내 정치경제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대미 양자 협의도 추진하겠다”며 “우선 양국 간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논의하기 위한 별도의 양자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고 이를 미국 측과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미 인플레 감축법에 대한 정부 대응은 세 갈래다. 우선 한-미 양자 간 협의를 통해 해결을 꾀한다. 이에 따라 부처 관계자들이 대거 미국을 방문했거나 할 예정이다. 양자 간 협의를 최우선으로 삼되 국제 분쟁 해결 절차도 아울러 검토하기로 했다. 미 인플레 감축법이 세계무역기구(WTO)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범 위배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정부는 분석하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독일·일본 등과 공조하는 방안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차별 조처는 한국 기업뿐 아니라 독일·일본 자동차 업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범부처 차원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정부 대응에도 전망은 밝지 않은 편이다. 법안 배경에 대한 정부 설명에도 실마리가 있다. 산업부 쪽은 해당 법에 대한 공식 설명 자리에서 “인플레 감축법이 법안 공개 후 약 2주 만에 전격적으로 통과됐다”는 점을 들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국내 정치 요소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했다. 정치적 배경을 띤 것이니 관련 정치 일정 마무리 전에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지난달부터 이미 시행에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도 법 개정 가능성은 희박하다.

국제 분쟁을 통한 해결 방안에도 크게 기대할 건 없어 보인다. 정부의 의지 자체가 낮다. 통상 규범 위배 가능성을 거론할 뿐 실제 제소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못 박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대신 세계무역기구 분쟁 절차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 역시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세계무역기구는 미국 쪽의 방해로 항소기구조차 구성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다. 제소를 통한 해결은 요원하다.

정부에서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점은 전기차 배터리의 광물 및 부품 요건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과정에서 숨통을 틔우는 일이다. 이미 발효된 ‘북미 최종조립’ 요건과 달리 광물 및 부품 요건은 내년부터 적용되는데다 구체적인 세부 지침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연내 미 재무부 장관의 가이드라인 형식으로 발표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된다. 법에서 배터리 광물은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나라에서 40%를, 배터리 부품은 북미 지역에서 50%를 조달할 경우에만 1대당 각각 3750달러의 혜택을 주게 돼 있다. 북미산 차종도 이 기준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산업부는 관측하고 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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