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의 시위대가 2022년 7월3일 카르툼에서 열린 군사정부 반대 집회에서 수단 국기를 들고 있다. 수단의 정치적 불안정은 외부 투자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이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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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간 전자우편으로만 소식을 주고받던 멘토 선생님을 한국에 잠깐 방문했을 때 직접 뵈었다. 20대 후반의 나는 어느덧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김 관장, 이 영화를 보고 감상평을 나중에 알려주세요. 아프리카에 직접 살아본 사람으로서 얼마나 영화가 현실감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멘토님이 추천한 영화는 <레드씨 다이빙 리조트>라는 넷플릭스 영화였다. 1979년 무렵 실제 있었던 일인데, 수단에 사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을 탈출시키는 이야기다. 이 유대인들은 결국 수단의 육로를 거쳐 항구에 도착한 뒤 이스라엘에 정착했다.
실제의 수단과 영화에 비친 수단은 어느 정도 비슷할까? 영화에선 수단 군인이 유대인에게 가혹행위를 하거나 수단인의 피부 색깔이 아프리카계로 보이는 등 다소 과장하거나 잘못 묘사한 장면이 제법 있었다. 수단 아이들의 입에서도 “아! 이건 우리가 아는 것과는 너무 다른데요” 하는 소리가 나왔다.
수단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레드씨 다이빙 리조트>.
수단인은 대부분 독실한 이슬람 신자라 대체로 온순한 성향을 갖고 있다. 이슬람 신자는 매일 다섯 차례 기도를 드리는데 이때 사원(모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아잔(기도의 종) 소리를 듣고 기도를 시작한다. ‘또 기도할 때가 됐나?’ 싶을 정도로 수단에서는 아잔 소리가 자주 흘러나온다. 기도 시간도 매우 긴 편이다. 기도를 놓친 사람들은 어느 곳에나 놓인 카펫 위에서 메카(이슬람교 최고 성지) 방향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기도를 한다. 극단성을 가진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이렇게 날마다 기도하니 대체로 따뜻한 성품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는 54개 나라로 이뤄졌다. 이 거대한 땅에 수천 종족이 다양하게 분포했고, 이웃이지만 강으로 가로막혀 있거나 길이 없어 한 번도 교류가 없는 종족도 존재한다. 수단 역시 지역과 종족 간 분쟁은 엄연한 현실이며 많은 사상자를 낸 내전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슬람문화가 깊숙이 밴 수단은 사하라사막 이남의 여러 아프리카 국가와는 사뭇 다른 면을 보인다. 종족과 인종이 달라도 함께 기도하는 순간 적대감보다는 친밀감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단이 2011년 남수단과 분리독립할 때도 종교적 영향이 매우 컸다. 두 나라는 이슬람과 기독교, 아랍어와 영어 등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요인이 제법 존재했다. 그럼에도 여러 종족이 공존하는 수단은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는 편이다.
영화에 나오는 수단의 수도 하르툼의 국제공항은 세트장을 직접 지어 촬영한 듯 보였다. 30여 년 전 이야기인데도 지금 공항보다 시설이 더 좋아 보여 시청하는 내내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르툼 공항은 철저하게 사진촬영이 금지돼 감독은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 하르툼 공항은 출입국관리 지역에서 수하물을 찾고 나가는 곳까지 한눈에 보일 정도로 비좁다. 심지어 비행기의 출발과 도착 시각을 알려주는 전광판도 없다. 마치 시내버스처럼 비행기를 타고 내리며, 짐이 나오는 장소도 눈치껏 파악해야 한다. 세상에 이런 공항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수단이 다시 어려움에 봉착했다. 쿠데타 이후 정치 불안과 글로벌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여파로 국민의 상당수가 식량위기 직전까지 내몰렸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수단의 2022년 농산물 생산량은 1년 전보다 35%나 줄고, 2022년 9월까지 1800만 명 이상이 극심한 허기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 극빈층은 전체 4500만 명 인구의 40%에 이른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단의 주요 곡물 수입지인 흑해 일대의 농업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더욱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흑해 일대에서 밀 수확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은 밀의 주요 수입국인 인근 이집트마저 어렵게 할 것이다. 수단에 상당량의 밀을 수출해주던 이집트가 자급자족을 위해 밀을 움켜쥔다면 수단에는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수단의 식량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통적인 농업 방식이 기술과 자본을 확보하지 못해 퇴보한 원인이 가장 크다. 그중에서도 세계에서 제일 거대한 농업계획 중 하나인 ‘게지라 프로젝트’(Gezira Scheme)의 방치 상태가 손꼽힌다. 1925년 영국이 식민통치를 할 때 수립된 이 농업 프로젝트는 88억㎡에 달하는 거대한 땅을 개간하는 작업으로, 이 땅은 ‘수단의 곡창지대’로 불릴 만큼 비옥했다. 규모가 짐작이 잘 안 가겠지만 가로세로 길이가 각각 100m에 해당하는 정사각형이 88만 개 들어갈 정도다.
수단의 독립 이후 이 계획이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생산량이 최고조에 이른 1970년대 중반에는 국내 총 농업용지의 11%에 불과한 면적에서 밀 생산량이 수단 전체의 4분의 3을 넘어섰다. 수단은 나일강변을 따라 늘어선 이 일대의 땅에서 식량 자급자족의 부푼 꿈을 꿀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은 수차례의 군사정변으로 이 일대 토지가 소수의 군인과 정치인의 손에 넘어가면서 깨져버렸다. 국제사회 제재까지 이어져 더욱 어려워졌다. 그 뒤 밀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1993년과 1998년의 대기근을 초래했고, 오늘날까지 기근이 이어지는 주요한 이유가 됐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던가. 천하의 근본인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수단의 농업 발전에 우리나라의 과거 경험이 도움될 것 같다. 우리나라는 50여 년 전에 자체적인 기술과 부단한 노력으로 농업 현대화를 이룩했다. 3년간의 전쟁을 겪으면서 황폐화한 농작지만 남은 뒤 우리나라의 최대 과제는 굶주림을 면하는 것이었다.
가을보리가 무르익기 전까지 버텨야 하는 보릿고개를 겪으며 우리나라의 농업 생산성에 혁신적인 발판을 마련한 것은 바로 통일벼의 탄생이었다. 당시에 쌀 품종 개량은 일본이 단연 앞서 있었다. 우리나라 연구진은 수많은 시도 끝에 1972년 일본쌀 자포니카와 인도쌀의 한 품종인 인디카를 교배해 통일벼를 완성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헥타르(ha)당 기록적인 쌀 생산량을 달성했다. 가장 생산성이 좋다는 단위당 일본의 쌀 생산량마저 넘어선 세계기록이었다.
물론 지금 쌀과 비교하면 통일벼는 식감이 거칠고 맛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고 식탁에선 보리밥 대신 쌀밥을 보게 됐다. 식량문제가 해결된 우리나라는 제조업으로 눈을 돌려 산업화를 이룩했다. 전쟁 뒤 20년도 채 안 돼 가난의 고리를 끊은 셈이었다.
수단 역시 앞으로 다가올 기아의 폭풍우에 대비해 농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주식인 밀뿐만 아니라 귀리·수수처럼 빵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체 작물의 생산량을 조속히 늘려야 한다. 특히 수수는 아프리카가 원산지인데다 고온건조한 기후에 잘 견뎌 수단의 기후 특성에 잘 맞는 곡식이다. 생산성을 높이려면 품종 개량, 농약·비료 확보 등이 중요하지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농기계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식량문제를 해결했던 한국이 수단에 농기계나 관련 품목을 제공한다면 수단 국민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기계 기업과 수단의 파트너가 장기간 협의하다 결국 가격 문제로 포기한 사례가 기억난다. 우리나라 기업의 실무자는 윗사람들을 설득해가며 수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지만 자본이 부족한 수단 기업은 가장 저렴하게 제시한 가격마저 수용하기 어려웠다. 앞으로 수단의 정치가 안정돼 외국인 투자와 원조를 받게 된다면 구매 여력이 차츰 나아질 것으로 기대해본다.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나아진 하르툼 공항의 실제 모습을 묘사한 <레드씨 다이빙 리조트>의 현실판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어느새 들려오는 아잔 소리에 한 줄기 희망을 띄워본다.
김재우 KOTRA 하르툼 무역관장 jnmlt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