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헝다그룹(China Evergrande Group)이 개발한 하이난성 단저우의 인공섬 ‘오션플라워아일랜드’ 건물 39동에 대해 중국 정부가 철거 명령을 내렸다. REUTERS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 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얼마 전까지 언론 지면을 장식하던 코로나19 기사가 인플레이션 관련 이슈로 대체됐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은 물론 인건비까지 급등하면서 고물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러 나라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코로나19 위기 극복 과정에서 풀었던 유동성을 회수하고,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3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5월에는 0.5%포인트 올려 0.75~1%로 운용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2021년 8월 이후 기준금리를 0.5%에서 0.25%포인트씩 다섯 차례 인상하면서 1.75%로 올렸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자니 늘어난 부채와 이자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까 우려스럽다. 물론 가계든 기업이든 부채가 늘어난 만큼 자산이 늘어나고 기업 규모가 커졌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지난 2년 동안 부채는 기하급수로 늘었다. 중국에선 코로나19 이전부터 기업부채가 경제의 발목을 잡으리라는 우려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부채 규모가 크고 그 증가 속도가 빨라 국제통화기금(IMF)은 경제의 거품이 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은 빠르게 늘어난 정부부채를 우려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과정을 돌이켜보면 1960년대 주력산업은 신발·섬유·식품류 등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이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조선·자동차·기계·철강 등 중화학공업이었다. 자본과 기술력 수준이 높지 않으니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오고 기술을 이전받거나 생산공장을 옮겨왔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입장에서 보면 저렴한 인건비를 비롯한 낮은 자본비용으로 고수익을 누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연평균 8.9%의 고도성장기를 거쳤으며, 1990년대에도 IMF 경제위기를 겪기 전까지 연평균 8.4%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인건비는 물론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기업은 더 이상 고수익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기업은 임금 등 비용이 상승하는 만큼 기술고도화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경쟁력이 유지된다. 당장은 기술 수준을 높이기 어려웠으니 업종 다각화 경영전략을 펴면서 기업부채 규모가 커졌다. 주력 업종에서 수익이 나지 않으니 이것저것 돈 되는 건 다 찔러봤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제위기의 원인을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경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1989년 70%에 불과하던 우리나라 기업부채는 1992년 80%를 넘어섰으며, 1996년 95%, 1998년에는 108.5%까지 높아졌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우·삼성·현대 등 재계 순위를 다투던 기업들이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는 점차 낮아져 2005년에는 74.1%를 기록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업부채 급증
중국은 1990년대 이후 저임금·저비용을 바탕으로 글로벌 생산기지 구실을 하면서 고성장을 이어왔다. GDP 성장률은 1991년부터 2010년까지 지난 20년 동안 연평균 10%를 상회했다.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도 중국은 성장률이 소폭 조정되는 데 그쳤다.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들이 저술한 <축적의 시간>을 보면, 조선·기계·반도체 등 제조업의 고도화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을 축적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축적의 시간을 대륙의 넓은 공간에서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축적의 시간적 한계를 공간으로 극복하는 효과’를 누렸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기술력을 무시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도 세계 주요국의 제조업 생산기지 구실을 하면서 임금이 급상승하고 부동산 등 부대비용이 대폭 늘어나 인도·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
기업부채도 급증했다. 중국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기업투자를 통한 성장전략을 펴면서 2007년 94.3%였던 GDP 대비 기업부채가 2010년 117.8%로 상승했으며, 2016년에는 160%에 육박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기업부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철강·석탄 등 전통산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했으며, 정책이 효과를 보이면서 2018년에는 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이 149.1%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완화적 정책 기조 등으로 기업부채가 빠르게 늘면서 2020년 160.8%로 다시 상승했다. 2020년 말 전세계 기업부채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육박한다.
‘나 홀로’ 대출금리 내리는 중국
그동안 가파르게 올라간 중국 인건비와 부동산 가격 등을 고려할 때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효율성이 떨어져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는 기업이 산적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중국 부동산 2위 업체인 헝다그룹이 2021년 파산 위기를 겪었고, 중국 대표 메모리 업체인 칭화유니도 인수·합병 과정에서 늘어난 과다부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를 따라잡을 첨단 반도체 기업을 만들기 위해 지난 3년간 3조원 가까이 투자했지만 성과가 없었다고 혹평했다.
세계 주요국들이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오히려 2021년 12월 이후 대출 우대금리를 세 차례 내렸다. 기업의 과다부채 문제가 투자위축과 고용불안 등으로 이어질 수 있어 중국 당국이 연착륙을 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자칫 중국의 기업부채 문제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면 중국 경제는 물론 글로벌 경제가 휘청일 수 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의 IMF 외환위기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지 예의주시해야 하는 시점이다.
김용 금융전문가 goldheade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