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금융시스템 전체를 혼란을 빠뜨린 것을 계기로 선진국에서 마련된 ‘금융체계상 중요한 금융기관’(SIFI)에 대한 정리제도가 우리나라에도 본격 도입된다. 오는 7월부터 은행과 은행지주회사가 ‘금융체계상 중요한 금융기관’으로 선정되며, 선정된 금융기관들은 경영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기준과 자구계획 등을 포함한 자체정상화계획을 올해 10월까지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18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이는 금융체계상 중요한 금융기관의 자체정상화계획과 부실정리계획 제도 등을 도입하기 위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공포된 데 따른 후속 작업이다.
글로벌 금융규제 협의체인 금융안정위원회(FSB)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형 금융회사의 부실이 금융시스템 전체에 퍼지고 실물경제의 위기도 초래함에 따라 금융체계상 중요한 금융기관에 대한 정리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정리제도는 금융회사의 부실 발생 시 정리당국이 금융제도의 안정성 유지를 위해 자금지원, 계약이전 또는 청·파산 등 정리권한을 행사해 해당 금융회사를 정상화 또는 퇴출시키는 제도다. 금융안정위원회 24개 회원국 중 20개국이 이미 이 권고안을 이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권고안의 주요 사항이 시행되지 않아 국제기구로부터 이행을 지속적으로 요청받아왔다.
시행령 개정안은 우선 금융체계상 중요한 금융기관의 선정 대상을 은행과 은행지주회사로 규정했다. 금융기관의 기능과 규모, 다른 금융기관과의 연계성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고려한 조처다. 또한 해당 금융기관은 매년 자체정상화계획을 제출해야 하는데, 이 계획에는 핵심기능과 핵심사업, 경영 위기상황에 대한 판단기준, 극복수단과 조치 내용 등을 포함해야 한다. 예금보험공사가 마련하는 부실정리계획에는 정리전략과 예금자 보호방안 등이 담겨야 한다. 금융위는 이 계획을 제출받은 날로부터 2개월 이내에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 심의위는 금융위 위원(위원장 1인)과 4명 이내의 민간전문가로 구성된다.
개정 금산법에는 또한 금융체계상 중요한 금융기관이 부실금융기관 등으로 결정되는 경우 거래상대방은 최대 2영업일 동안 특정한 파생금융거래 등 적격금융거래를 종료·정산시킬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시행령 개정안에서는 일시정지의 기간은 일시정지 결정이 있은 때부터 최대 2영업일의 범위에서 금융위가 정하는 시간까지로 구체화했다.
이 조치는 2008년 위기 당시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신청 후 5주 만에 전체 파생계약의 80%(약 73만건)에 대해 상대방이 기한 전 계약종료권을 행사하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킨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 마련됐다. 금융안정위원원회는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체계상 중요 금융기관의 정리제도 개선의 주요 사항으로 일시정지 제도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회원국 24개국 중 15개국이 계약종료권 일시정지 제도를 도입한 상태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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