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 대 23.9%.
신용등급 1등급은 은행을 찾아 연 2.05%(최저·8월 기준) 이자율로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다. 신용등급 6등급 이하는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들 뿐 아니라 대부업자를 찾을 경우 연 23.9%의 이자율을 부담해야 한다. 100만원을 빌린 경우를 단순 비교하면 고신용자는 1년에 이자를 2만500원만 내면 되지만, 저신용자는 23만9000원을 내야 한다.
이 격차는 한국은행이 올해 초 기준금리를 0.5%까지 인하한 뒤 시중은행 금리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최대 수준까지 벌어진 상태다. ‘빚투’(빚내서 투자)를 위한 신용대출이 사상 최대로 늘었다는 코로나19 시대에 이자율이 양극화된 셈이다. 금융위원회 자료를 보면, 국내에 4등급 이하 금융 소비자 2263만명(전국민의 50%)는 고금리 상품을 이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 국민에게 일정액을 장기저리로 빌릴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을 주자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대출권’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ㄱ씨는 최근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어 돈을 구할 수 있을지 물었다. ㄱ씨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종업원들을 내보내며 버텼지만 사정은 계속 어려워졌다. 신용보증기관들의 대출도 한도까지 전부 채워 썼고, 정부가 긴급지원한 소상공인 대출까지 모두 사용했다. 그는 결국 대부업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김영진 서민금융진흥원 고객상담부 대리는 “생활비가 필요한 ㄱ씨가 대부업자를 찾았지만 바로 다음달부터 원리금 상환을 해야하는 부담이 너무 커 상담을 요청했다. 더이상 금융기관 대출이 안되는 상황이지만 중금리 대출상품 햇살론17을 받아 대부업자 빚을 일단 갚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ㄱ씨는 이자 부담을 낮춰 코로나19 불황을 견디고 있다. 김영진 대리는 “상담을 하면 본인 얘기를 하면서 ‘어디를 가도 대출이 안 된다’며 우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정부는 ㄱ씨처럼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한 서민 정책금융 상품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대출 상품으로는 ‘미소금융’ ‘햇살론’ ‘햇살론17’ ‘햇살론유스’ ‘새희망홀씨’ 등이 있다. 미소금융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 또는 차상위계층 이하를 대상으로 하며, 운영자금으로 2000만원(이자율 4.5%)을 빌려준다. 한부모·조손·다문화가족·북한이탈주민·장애인 가운데 신용등급이 낮은 이도 미소금융 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1200만원을 최대 5년 동안 3% 이자율로 빌려준다. 햇살론유스는 만 19∼34살이면서 연소득 3500만원 이하인 취업준비생이나 중소기업 재직자(1년 이하)에게 3.6∼4.5% 이자율로 12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햇살론은 신용등급이 6∼10등급(연소득 4500만원 이하)이거나 연소득이 3500만원 이하면 1500만원까지 빌려주는 상품이다. 복권기금과 금융기관의 출연금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보증상품인데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신협 등을 찾으면 가능하다. 금리는 10.5% 이하다. 저신용자들이 일반 저축은행을 찾아 신용대출상품을 이용할 경우 평균 15∼18%의 이자율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자를 아끼는 효과가 크다.
근로소득자나 자영업자가 아닌 이들을 위한 햇살론17 상품도 있다. 햇살론17은 신용등급이 낮은 프리랜서 등을 대상으로 최대 1400만원까지 빌려준다. 이자율은 17.9%다. 이현경 서민금융진흥원 과장은 “은행에서 대출이 가능한 분들은 10%가 넘는 이자율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를 찾는 분들은 24%의 고금리를 부담하는 경우가 많다. 중금리 상품이라도 있어야 이들이 갈 곳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은행이 취급하는 새희망홀씨 대출도 있다. 은행이 수익의 일정 부분을 서민에 대한 저금리 신용대출상품으로 공급한다. 6∼10등급(연소득 4500만원 이하) 등 저신용자가 신청하면, 은행의 심사를 거쳐 3000만원 내에서 빌려준다. 올 상반기에도 11만1844명에게 1조8897억원이 공급됐다. 성실히 상환하면 500만원을 추가 대출해주거나 금리 혜택을 준다.
종류가 다양한 서민금융 대출상품이 복잡하다면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 누리집이나 애플리케이션(앱)의 ‘맞춤대출 서비스’를 찾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맞춤대출은 은행부터 서민금융까지 64개 기관 180개 상품의 대출 가능 한도와 금리를 한눈에 비교해주고 적합한 대출을 추천해준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발품을 줄여주며, 특히 햇살론 등 서민금융상품의 경우 협약을 맺은 금융회사를 통해 최대 1.5%의 금리를 인하해준다. 김영진 대리는 “주거래은행을 찾아갔다가 대출이 안 된 분들이 급한 마음에 인터넷 포털 검색을 통해 대출을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대출은 빠르게 진행될 수는 있지만 이자율이 높다”고 전했다.
서금원은 맞춤대출을 통해 저신용·저소득층이 대부업 평균금리 21.1%보다 9.7%포인트 낮은 평균 11.4% 금리의 대출을 안내 받았다고 밝혔다. 올해 7월까지 맞춤대출 실적은 6만10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만1000건)보다 192% 늘었다. 권은영 서금원 홍보협력실 과장은 “토스나 카카오페이 같은 핀테크 업체에서도 대출비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저신용자들은 거절되거나 금리가 높은 대출만 연결된다. 서민을 위한 대출 서비스는 서금원이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법률 개정안을 의결해 서민금융상품의 공급을 유지하기 위한 재원확보 방안을 마련했다. 정부 출연 규모도 늘리고, 민간 출연 주체를 저축은행 등에서 은행·보험사 등 전체 금융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서민금융 상품을 개선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은 최근 서민금융 이용자의 카드 소비 행태를 분석한 ‘정책서민금융상품에 대한 평가와 개선방향’ 보고서를 통해 “서민금융의 효과는 단기적으로만 나타났으며 대출자가 이후 다시 고금리 대출을 증가시키는 행태를 방지하지 못했다”며 “저금리 정책서민금융상품이 이용자들의 채무구조를 개선하여 궁극적으로 이들의 채무조정 신청·이용 확률을 감소시키기 보다 채무조정 시기를 지연시켰음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대출자들에게 신용관리교육 및 신용상담 이수를 의무화하고, 정책자금을 한번에 큰 금액으로 공급하기 보다 소액으로 나눠 여러 차례에 걸쳐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신용관리에 유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
“1397을 119처럼 생각해달라.”
이계문 서민금융진흥원장은 취임 2년을 맞아 23일 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서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닥쳤을 경우, 마치 재난 상황에서 소방서를 찾듯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이계문 원장은 “신용유의자 가운데 10만명은 매해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신용불량’에서 해지가 된다. 그런데 통계를 보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민금융진흥원을 몰라 해지를 못 하는게 안타깝다. 대출이 연체된 뒤 여기까지 찾아오는데 평균 37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지원센터의 상담 역량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 원장은 “소액 대출 1000만원을 지원해 개인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겠냐”며 “햇살론 고객 숫자가 거의 100만명인데 이들에게 다른 채무가 생기면 소용이 없다. 금융교육을 하고 신용부채 컨설팅을 신설해 이들의 자립을 돕겠다”고 했다.
서금원은 지난해 7월부터 고령자 등 금융취약계층이 쉽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콜센터 대응을 에이아르에스(ARS)에서 상담사가 직접 전화를 받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직접 연결방식으로 개편한 뒤 올해 1∼7월 응대 실적은 52만50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3만3000건)보다 58% 증가했다. 일과 시간에 바쁜 서민들을 위해 24시간 상담이 가능한 챗봇도 도입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상담도 가능하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