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형 금융통화위원이 2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겸한 세미나를 열어 금융불균형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줄어들었지만 아직 안전지대에 온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 제공
“단기적으로 물가압력을 높이기 위한 완화적 통화정책이 과도한 금융불균형을 유발할 경우 저성장, 부채부담 확대 및 특정 산업 상품의 과잉 공급으로 오히려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 추세를 하락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멤버 가운데 가장 매파적 인사로 꼽히는 이일형 금융통화위원이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해 “아직 안전지대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금융불균형(가계부채) 문제가 있는 만큼 시기상조라며 선을 그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 금통위원은 2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금융불균형이란’을 주제로 출입기자들과 점심을 겸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 위원은 “금융불균형은 금융자산(부채) 규모가 한 경제의 생산역량에 근거한 미래소득의 현존 가치를 크게 상회할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내수 증대에 소요된 자원이 시간을 두고 지속 가능한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지지 않은 만큼 낭비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며 “레버리지 확대로 금융불균형이 형성될 경우 레버리지를 통한 단기적인 경제적 편익보다 중기적 비용이 커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낮은 물가를 이유로 금리를 낮추자는 주장에 대해, 그런 완화적 통화정책이 중장기적으로 물가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가 안좋고 물가가 낮으면 금리를 인하해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단선적인 판단의 부작용을 지적한 것이다.
이 금통위원은 특히 한국 상황과 관련해 “최근 몇년간 경제주체들의 레버리지 확대가 부동산시장으로 쏠리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며 “부동산에 대한 과잉투자는 서울에서는 가격 상승과 이에 뒤따르는 가격 재조정으로, 지방에서는 건설투자 확대에 따른 공실률 상승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 임대사업 등 부동산 관련 산업에 대한 과잉투자는 차후 폐업률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거시건전성 강화, 금리조절 등으로 어느 정도 가계부채 누증 속도가 완화된 것은 확실하지만, 그 수준 자체가 높기 때문에 아직 안전지대에 왔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다만 (현재처럼) 계속 조절을 잘해나간다면 큰 문제 없이 재조정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경제학 학사~박사 학위를 받은 이 금통위원은 10여년 동안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일하며 중국사무소장 등을 지냈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을 거쳐 2016년 4월 한은 총재 몫 금통위원으로 지명됐다. 기준금리 동결이 결정됐던 지난해 7월, 8월, 10월 금통위 회의 때마다 인상 소수의견을 내는 등 현 금통위원 가운데 가장 매파적(물가안정을 위한 금리인상(긴축) 선호) 색채가 강한 인물로 손꼽힌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