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디비(KDB)산업은행이 지난해 12월 미국 지엠(GM·제너럴모터스)과 한국지엠의 연구개발법인 분리에 합의한 뒤 “이익이 많은 합의”라고 내세웠으나 연구개발 물량 등 핵심 사안 대부분을 비공개로 돌렸던 탓에 추가 내용이 드러날 때마다 내부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깜깜이 합의’의 포장이 벗겨질 때마다 산은에 대해 “성과 과대포장”, “무능 은폐”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산은과 한국지엠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산은은 지난해 12월18일 지엠과 합의할 당시 신설 연구개발법인이 “준중형 스포츠실용차(SUV)와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의 중점 연구개발 거점으로 지정됐다”고 발표했으나, 이 발표엔 ‘나인비(9B) 플랫폼에 기반한 차량에 국한된다’는 핵심 내용이 빠져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산은이 첫번째로 내세운 성과가 ‘중점 연구개발 거점 지정’이었는데, 중요한 내용을 비공개로 돌렸던 셈이다.
당시 산은은 향후 한국 거점이 수행할 연구개발 물량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도 공개하지 않았다.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10년간 연구개발 지속 보장을 위해 물량계약 등 구속력 있는 합의 조항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지엠에) 연구개발 비즈니스 계획을 제출해달라고 해서 지속가능성을 확인했다”고만 답했다.
그러나 이런 비공개는 구체적 합의의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면서 산은이 합의 성과를 과대 포장하거나 무능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담겼던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부르고 있다. 산은과 한국지엠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신설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GMTCK)가 수행할 에스유브이 연구개발 물량은 현시점에선 트랙스 후속 모델인 ‘9BUX’에 국한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한국지엠 직원과 노조 등은 12월 합의 당시 에스유브이의 연구개발 물량을 트랙스 후속인 9BUX와 이쿼녹스 후속 프로그램 두 가지로 이해하고 있었다. 앞서 지엠 쪽이 지난해 7월 법인 분리 추진을 처음 발표할 때, 배리 엥글 미 지엠 사장은 물론 한국지엠 카허 카젬 사장도 향후 한국이 차세대 콤팩트 에스유브이의 개발을 담당하는 거점이 될 것이라고 운을 뗐던 탓이다. 문제의 차세대 콤팩트 에스유브이는 이쿼녹스 후속 프로그램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 7일 노조 행사에 온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전주명 부사장이 “콤팩트 에스유브이 연구개발 물량은 중국으로 가는 것으로 변경됐다”고 공개하면서, 산업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지엠이 산은과의 합의를 뒤집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 셈이다.
하지만 산은과 지엠 쪽은 둘 다 “합의서는 준수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 연구개발 거점 지정 발표 때 “준중형 에스유브이”라고만 언급했으나, 합의서 영문 내용은 ‘나인비 플랫폼에 기반한 시급 에스유브이’(C SUV and CUV based on 9B platform)라는 점을 추가로 밝혔다. 이쿼녹스 후속 프로그램은 나인비 플랫폼 차량은 분명히 아니며 델타 플랫폼에 기반할 것으로 알려진 차량으로, 지엠이 말을 바꿔 중국으로 물량을 옮겨간다 해도 산은과의 합의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결국 이런 민감한 내용에 대해 양쪽이 모두 입을 닫았던 탓에 산은의 합의 성과가 세간에서 부풀려져 인식될 수 있었던 셈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산은은 법인 분리 발표 때 계약상 영업기밀 등을 들어 수익성 개선 효과 등 합의 득실을 따져볼 숫자와 구체적 연구개발 물량 등을 모두 비공개로 돌렸는데, 실무적으로 내용이 공개될 때마다 갈등과 논란을 양산하고 있다”며 “우리가 이익이 많은 좋은 협상을 알아서 했으니, 그냥 믿고 있으란 식의 산은 태도는 국민의 돈인 정책자금이 8천억원이나 들어간 상황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짚었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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