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국내 자본시장의 변화
‘재벌에 정면 도전’ 행동주의 펀드 등장
글로벌 행동펀드도 두배로 증가 흐름
”펀드가 혁명에서 잃을 것은 작은 이익뿐”
‘재벌에 정면 도전’ 행동주의 펀드 등장
글로벌 행동펀드도 두배로 증가 흐름
”펀드가 혁명에서 잃을 것은 작은 이익뿐”
‘하나의 유령, 행동주의라는 유령이, 여의도를 떠돌고 있다.’
2019년 한국 자본시장의 화두는 ‘주주행동주의’다. 포문은 지난해 열렸다. 644조원의 자산을 굴리는 ‘공룡’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했다. 수탁받은 주주권을 앞으로 행사할 것이라고 예고하며, ‘거수기 이사회’와 ‘만장일치 주주총회’로 회사를 꾸려온 국내 재벌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9월에는 ‘대한민국 1호 주주행동주의 펀드’를 내건 플랫폼파트너스가 주주총회에서 외국계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와 격돌했다. 운용보수를 낮추자고 ‘깃발’을 꽂고 행동에 나서자 다른 투자자들도 동조했다.
재벌의 성채를 정면 공략하는 행동주의 펀드도 등장했다. 이른바 ‘강성부펀드’로 알려진 주주행동주의 펀드 케이씨지아이(KCGI)는 지난해 11월 한진칼 지분공시를 통해 9.0%의 지분을 경영참여 목적으로 인수했다고 밝혔다. 주주행동주의란 실적이나 배당 등에 투자하는 소극적 방식에서 탈피해 직접 경영에 개입해 기업 가치를 향상시킴으로써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전략을 말한다. 행동주의 펀드가 이 전략을 재벌에 예외없이 적용한다는 게 한국 자본시장의 새로운 변화다.
이전에 국내 재벌을 향한 정면 도전은 에스케이(SK)를 겨냥했던 ‘소버린’과 삼성을 겨냥했던 ‘엘리엇’ 등 외국계 펀드 뿐이었다. 국민연금도 덩치만 컸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화려하게 등장했던 ‘장하성 펀드’도 몇년만 해보고 사라졌다. 전 증권사 고위관계자는 “국내 펀드매니저들이 재벌을 향해 행동하면 나중에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거나, 해꼬지를 당했던 경험들이 있다”고 했다. 또 “엘리엇 하면 국민들이 거부감을 보이는 등 행동주의 펀드의 개입은 ‘기업 사냥꾼’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다”고 했다.
그러나 재벌은 스스로 빌미를 제공했다. 김재윤 케이티비(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진그룹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개입은 오너가의 이른바 갑질 이슈와 겹치며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경영진에 의한 주주가치 훼손이라는 명분을 확보함에 따라 경영개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행동을 앞세운 ‘주전파’들에게 필요한 것은 명분이다. 이제 명분을 확보했으니 일전을 겨뤄볼만 해졌다.
행동파들의 부상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한국투자증권 보고서는 “지난 20년 동안 미주 지역에서는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알파 수익을 추구하는 행동주의 투자가 중요 전략으로 부상했다. 2013년 이후에는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주요 아시아 지역 국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함에 따라 아시아에 행동주의 투자자가 크게 증가했다”고 행동파 흐름을 분석했다.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 숫자도 2013년 상반기 275개에서 2018년 상반기 524개로 증가했다. 케이티비투자증권 보고서는 “특히 아시아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개입은 2013년 34회에서 2017년 106회로 큰 폭의 증가를 보였다”고 했다.
행동파들은 자신의 견해와 의도를 감추는 것을 하지 않는다. 자본시장법상 상장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5% 이상 보유하면 보유상황과 보유목적을 보고해야한다. 자신의 패를 까고 시작하니 불리한 싸움이라 할만 하다. 그러나 행동파들은 자신의 목적이 낮은 주주환원정책과 경영진 리스크를 타도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재벌로 하여금 주주행동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펀드가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작은 이익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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