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으니까 (회계 관련) 문제가 드러난 것이고, 다른 곳에서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이른바 ‘삼성바이오 사태’의 근원은 무엇일까? 10년 이상 대기업 회계감사 경력이 있는 회계사 ㄱ씨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는 국내 경제계의 회계 투명성 문제 일부만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한국의 ‘회계 투명성’ 순위는 63개국 가운데 62위(2018년 기준)다.
지난달 검찰은 삼일PwC·삼정KPMG·딜로이트안진·EY한영 등 국내 대형 회계법인 4곳, 이른바 ‘빅4’를 압수수색했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를 고의로 판정하고 고발하자, 검찰은 삼정KPMG와 딜로이트안진 등 대형 회계법인을 수사하고 있다. 이전에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직후의 대우사태를 시작으로 에스케이(SK)글로벌, 대우조선해양 등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은 모두 대형 회계법인과 연결됐었다. 회계투명성이 바로 회계업계 빅4와 맞닿아 있는 셈이다.
국내 회계투명성이 낮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기업과 대형 회계법인의 오래된 ‘동거’가 꼽힌다. 7일 대신지배구조연구소가 10대 대기업 집단(재벌) 상장사의 외부감사인 현황(2017년 사업보고서)을 조사한 결과, 95.8%가 빅4 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으로 선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기업 가운데 롯데지주와 롯데제과가 증선위로부터 빅4 외 회계법인(한울)으로 감사인을 지정받았다가 2018년 다시 삼일을 선임한 것을 감안하면, 빅4 점유율은 실제로 98%에 이른다.
삼성그룹은 삼일과 안진, 현대차그룹은 한영과 삼일, 에스케이그룹은 한영과 삼일, 엘지그룹은 삼일과 삼정이 계열사 감사 일감을 많이 수주했다. 15년 경력의 회계사 ㄴ씨는 “외부 감사인을 정할 때 재벌은 계열사별로 누구에게 줄지 지주사에서 정한다. 한 곳에 몰아주지 않고 적절히 나눠줘 서로가 경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대 그룹이 아닌 매출 100대 기업으로 기준을 바꿔도 이는 비슷하다. 시이오(CEO)스코어가 <한겨레> 의뢰로 만든 100대 기업 외부감사인 현황(2018년 3분기 기준)을 보면, 97곳의 외부감사인이 빅4 회계법인으로 나타났다. 한국전력공사(삼정)와 한국토지주택공사(안진) 등 공기업 뿐만 아니라 하나은행(한영), 삼성생명(삼일) 등 금융권 대기업도 모두 빅4를 선임했다.
국내 회계감사 시장의 빅4 쏠림 현상은 금융감독원이 회계법인의 2017년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전체 175개 회계법인 매출액 가운데 빅4 비중은 50.3%(1조4998억원)에 달했다. 회계법인 4곳이 국내 감사 일감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대기업 회계감사가 빅4로 쏠린 채 고정된 것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삼성전자(삼일)와 삼성중공업(삼일), 현대자동차(안진) 등은 외부감사인을 공시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한 차례도 회계법인을 바꾸지 않았다. 시이오스코어가 2015년 말 기준 500대 기업의 외부감사인 현황을 조사한 결과, 10년 이상 같은 회계법인으로부터 회계감사를 받는 기업은 114개(23.6%)에 달했다. 손혁 계명대 교수(회계학)는 “외부 감사인이 동일한 회사를 오래 감사하다보면 특수관계가 되는데 결국에는 종속되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회계학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했다. 박주근 시이오스코어 대표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담당 최고 파트너가 바뀔 경우에 한해 동일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길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며 “미국 딜로이트는 15년째 회계감사를 맡은 기업이 3개에 불과하다”고 했다.
빅4의 사업구조도 대기업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ㄴ씨는 “회계법인은 회계감사뿐 아니라 가치평가·인수합병 등 컨설팅 용역도 따야하기 때문에 수십억, 수백억원 일감을 가지고 있는 고객에게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빅4 사업보고서를 보면, 전체 매출액 가운데 회계감사 업무는 32.9%(4927억원·2017년 기준)에 불과하다. 반면 경영자문(컨설팅) 매출액은 2015년 4907억원에서 2017년 6573억원(43.8%)으로 증가했다. 이총희 청년회계사회장은 “감사비는 글로벌 기준에 견줘 낮은 편이고, 컨설팅 용역비는 감사비보다 높다. 감사보수가 오르지 않으니 감사팀도 경험이 적은 회계사로 구성돼 자동적으로 회계감사가 부실화되고 있다”고 했다.
100대 기업 가운데 산업은행의 외부감사인을 빅4가 아닌 삼덕회계법인이 맡고있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장영철 중견회계법인협의회장(삼덕 대표)은 “산업은행 감사를 이전에는 빅4에서 했는데, 산업은행이 (출자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컨설팅 일감이 많다보니 빅4가 이를 수임하기 위해 감사를 포기했고 삼덕이 어부지리로 외부감사인을 맡았다”고 했다. 회계법인은 독립성 규정상 한 회사의 회계감사와 컨설팅을 함께 맡을 수 없다.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회계에 외부감사인인 삼정회계법인이 공모한 의혹은 이런 사정과 모두 연결된다.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예전에 삼정은 다른 회계법인과 달리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 클라이언트(고객)가 없었다. 한때 삼정 파트너들은 승진 시즌에 삼성 임원과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을 대표에게 보고하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삼성바이오를 맡았으니 (다른 일감을 따내기 위해) 얼마나 잘하고 싶었겠냐”고 말했다.
물론 빅4가 대기업 회계감사를 과점하는 게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 ㄱ씨는 “국내 기업이 외국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공신력 있는 회계법인의 확인이 필요하다. 빅4가 국제적으로 이름 있는 회계법인과 제휴를 맺고 있기 때문에 다른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일회계법인의 김지현 이사는 “대기업들은 해외까지 많은 사업장이 있고 정해진 시간 안에 사업장 결산을 하고 연결 재무제표까지 가려면 굉장히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또 감사인을 바꾸면 처음 들어온 회계법인이 그 회사의 회계흐름을 이해하는 데 초기 시간과 투입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한 회계법인이 오래 맡는 것인데 이를 오래한다고 해서 유착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또 회계감사를 자주 교체한 경우보다 장기간 맡긴 회계감사의 감사품질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이후 회계법인과 대기업이 유착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사인지정제가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2017년 개정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은 상장사 등이 올해 11월 이후부터는 6년 동안 감사인을 자유선임한 뒤 그 뒤 3년은 증선위가 선정한 감사인을 받도록 했다. 박근서 성도이현회계법인 대표는 “감사인지정제 도입으로 회계법인 역량이 충분하다면 과거 보다 대기업 감사를 수임할 수 있는 여건은 좋아졌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전문가들은 이뿐만 아니라 기업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금융감독원의 감리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임과 평가 과정이 확보되어야,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가 ‘거수기’가 아닌 제대로 된 감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다른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상장회사 회계감독기구가 미국에 상장한 한국 회사의 외부감사인을 감사하러 가끔 온다. 회계법인 실무진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곳에서 감리하는게 한국 금감원과 수준차이가 많이 난다고 한다”며 “금감원이 회계법인에 대한 공적 모니터링을 할 수 있게 실력을 갖춰야 국내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