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2일 한국은행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읽고 있는 이주열 한은 총재. 한국은행 제공
“물가가 이렇게 떨어질지 몰랐다. 유가가 큰폭으로 떨어졌다. 지난번에 봤던 것보다 밑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이주열 총재)
연초부터 한국은행의 물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한은의 물가상승률 전망치와 실제 수치가 괴리되는 현상을 보여왔는데, 올해는 갑작스레 급락한 국제유가로 인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2일 오전 시무식 뒤 기자실을 찾아 ‘물가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10월에 (올해 1.7% 오를 것이라는) 물가 전망을 내놨었는데, 두달 사이에 물가가 크게 변해서 (이달 내놓을) 전망은 아무래도 낮추는 쪽으로 변할 것 같다. 하지만 공공요금이 오른다든가 하면 상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배럴당 70달러대였던 국제유가가 지난달에는 40달러대로 40%나 급락해, 물가상승률 전망치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었다.
사실 한은의 ‘생각보다 낮은 물가상승률’ 고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4년 10월 경제전망 때 2015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4%로 예측했지만, 실제 상승률은 0.7%에 그친 게 대표적이다. 2016년에도 소비자물가는 전망치(1.7%)보다 훨씬 낮은 1% 오르는 데 그쳤고, 지난해에도 1.8% 상승을 점쳤지만 실제는 1.5% 올랐을 뿐이다.
특히 최근에는 외부 변수에 따라 급격하게 움직여 예측이 힘든 석유류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의 전망치와 실제 상승률 사이 괴리가 커지고 있다. 2017년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2016년 10월 경제전망)는 1.8%였지만 실제는 1.5%에 그쳤고, 지난해에는 1.9% 전망에 실제 1.2%로 격차가 확대됐다. 지난해 근원물가 상승률 1.2%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인 1999년(0.3%) 이후 최저치다.
이런 저물가 기조에 따른 물가전망 오류는, 경기가 좋고 성장률이 높을수록 물가도 뛴다는 과거 통념이 현재에는 들어맞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한은은 지난해 11월 내놓은 통화신용보고서에서 ‘대학입학금의 폐지·축소 및 지역별 고교 무상교육 시행’, ‘병원검사료·입원진료비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범위 확대’같은 정부의 교육·의료 등 복지정책 강화가 근원물가 상승률 둔화로 이어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늘어나는 수요(소비) 대부분이 경쟁이 치열하고 중간 마진이 없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온라인 쪽 증가분인 점도 물가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물가가 오르지 않거나 떨어지는 게 좋을 수 있지만,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수요감소에 따른 디플레이션의 경우 소비자와 기업의 소비·투자지출 감소→가격 하락→생산 위축→고용 감소·임금 하락으로 이어진다. 고용 감소와 임금 하락은 또다시 수요감소로 이어져 악순환을 부르고, 최악의 경우 공황을 부르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이 고열(인플레이션)만큼이나 저체온증(디플레이션)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문제는, 복지확대나 온라인거래 활성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여서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한은 한 고위 관계자는 “물가가 너무 안오르면 ‘왜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느냐’는 얘기까지 나오게 된다”며 “(미국과 금리격차 확대와 가계부채 증가세를 고려하면) 금리인하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지만, 물가 상황만 보면 할 수는 있는 얘기여서 한은으로서는 (응대가) 곤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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