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가 지난 1일 서울중앙지검 1층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삼성 총수일가 등을 배임·주가조작 혐의로 추가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완 기자
지난 1일 오전 11시, 참여연대 활동가와 회원 7명이 서울중앙지검 1층 현관에 모였다. 기자는 2명, 방송카메라는 한대만 있는 주목받지 못한 기자회견이었다. 이들의 손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삼성 총수일가 등 배임·주가조작 혐의’ 추가 고발장이 들려 있었다. 홍순탁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는 “퍼즐이 거의 다 맞춰졌는데, 검찰이 전체적인 진실을 밝히길 촉구한다”고 검찰청사를 향해 소리쳤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주목받지 못해도 활동을 계속한 시민단체 덕분이었다. 참여연대는 지난 2년 동안 32차례의 보도자료, 질의서, 논평 등을 내며 삼성바이오 관련 ‘퍼즐’을 끈질기게 세상에 끄집어냈다.
참여연대는 2016년 12월21일 금융감독원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 회계처리, 자료공시 등에 대한 질의서’를 발송하며 처음으로 문제 제기에 나섰다. 홍순탁 회계사는 “최순실 국정조사를 하면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할 때의 자료가 나왔다. 그때 ‘적정가치 산출 보고서’라는 자료가 있었는데 삼성바이오가 매우 높게 평가되어 있었다. 이익이 안 나는 초기 단계 바이오기업을 왜 이리 높게 평가하나 살펴보다 분식회계를 확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때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재점화에 나섰다. 심 의원은 다음해 2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삼성바이오의 편법회계는 금감원이나 금융위 지원과 엄호 아래 이뤄진 마술이다”라고 금융위원회를 질타했다.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금감원은 3월 말 삼성바이오가 회계처리 규정을 위반했는지 따지는 특별감리에 착수했다. 이후 1년여의 감리 끝에 금감원은 올해 5월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사이 김경율 회계사 등 참여연대 회계사들과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이 이슈를 확산시키려 노력을 계속했다.
이건희 회장의 차명 재산 등 삼성의 불법을 파헤치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 7월 박용진 의원실 김성영 보좌관은 어렵게 자료를 찾아내 회계법인들이 증권사 보고서에 나온 수치들을 대충 인용해 삼성바이오 가치를 산정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국민연금을 움직이는 데 빈약한 논리가 활용됐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만으로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의 퍼즐을 다 맞추지 못했다. 분식회계 여부를 가려야 할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7월 삼성바이오의 고의적 회계기준 위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금감원에 재감리를 요구했다. 금감원으로선 결정적인 ‘한방’이 필요했다. 그런데 재감리 도중 금감원에 뜻밖의 제보자가 찾아왔다. 그는 2015년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작성한 내부문건을 들고 왔는데, 분식회계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주장하고 있던 스토리를 완벽히 뒷받침하는 증거였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를 취재해 삼성바이오 회계처리 기준 변경에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관여했고, 회계법인 등과 공모해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저지른 정황이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삼성바이오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삼성바이오와 회계업체, 금감원 등이 참석한 증선위 재심의는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자 지난 7일 박용진 의원은 국회에서 면책특권을 활용해 삼성바이오 내부문건을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박 의원은 “거대 기업에 의해 저질러지고 정부당국에 의해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이런 상황들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끈질김과 제보, 용기가 모여 분식회계의 퍼즐은 맞춰졌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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