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신인석 금융통화위원이 출입기자들과 ’기대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을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신 위원은 이날 통화정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볼 것은 물가라며, 현재의 낮은 물가 수준을 고려할 때 금리인상 필요성이 떨어짐을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한국은행 제공
‘비둘기파의 분화인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비둘기파(금리인하 선호)로 분류되는 신인석 위원이 기준금리 결정과 관련해 물가를 가장 중요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에 미달하는 만큼 금리인상 필요성이 없다는 의중을 내비친 셈이다. 같은 비둘기파인 고승범 위원이 지난달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며 금리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것과 대비돼 한은 안팎에서 관심이 쏠린다.
신 위원은 12일 서울 세종대로 한은 본관에서 열린 출입기자 세미나에서 “최근 1년 유심히 보는 지표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답은 ‘물가’다. 물가안정은 한국은행이 추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목표인데, 최근 5년(2013~7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24%에 그쳤다”고 말했다. 물가가 너무 오르면 금리를 올려 안정시켜야 하는데, 현재는 물가가 낮으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또다른 통화정책 목표인 실물경기 안정, 금융안정과 관련해서도 “최근 5년 성장률이 3%이고, 올해도 2.8~2.9% 수준으로 예상돼 당분간은 잠재성장궤도 수준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4년경부터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높아진 점은 우려지만, 잠재 위험요인일 뿐 통화정책까지 나서서 대응해야 할 정도로 현재화된 위험은 아니다”라며 금리인상 필요성이 없음을 강조했다.
이런 주장은 지난 7월18일 열린 세미나에서 고승범 위원 발언과 대비를 이룬다. 고 위원은 당시 ‘금융안정의 중요성’을 주제로 한 발표문에서 “금융안정 이슈는 일차로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대응하되 통화정책으로도 보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금리인상으로 가계부채 문제에 대응하는 게 한계가 있고 취약차주의 가계부채 부담 증대로 이어질 수도 있겠으나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시그널 효과 내지는 심리적 효과로 가계부채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지난해 11월 기준금리 인상 찬성은 금융안정(가계부채) 문제 때문임을 밝혔다.
지난 7월18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고승범 금융통화위원이 ‘금융안정의 중요성’을 주제로 출입기자 세미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날 고 위원은 금융안정에 그 어느 때보다 유의해야하는 시점이라며, 가계부채 동향 등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동철, 신인석 위원과 더불어 금통위 내 비둘기파(금리인하 선호)로 분류되는 고 위원이 추가 금리인상 필요성에 열린 자세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국은행 제공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며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한국은행법 1조)가 한국은행 통화정책의 목적인데, 신 위원은 물가안정에, 고 위원은 금융안정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신, 고 위원은 교수(중앙대)와 관료(금융위)로 전직은 다르지만, 서울대 경제학과 선후배이자 미국 대학(스탠퍼드대, 아메리칸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공통된 배경을 가지고 있다. 또 둘 다 정부 쪽 추천 몫으로 2016년 4월 나란히 금통위원에 취임했으며, 그 뒤 지금까지 22번 열렸던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단 한번도 서로 다른 의견을 내본 적이 없다. 이런 점을 들어 한은 안팎에서는 이들 두 사람에, 역시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대학(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은 조동철 위원까지 더해 ‘비둘기파 트리오’로 분류해 왔다.
항상 같은 행보를 걸어온 두 사람이 현재 통화정책(기준금리 결정)에 있어 뭘 더 중요하게 봐야하는지에 관해 서로 다른 시각을 드러내자, 한은 안팎에서는 “중요한 시기에 한 사람은 ‘나를 비둘기로만 보지 말아라’, 다른 한 사람은 ‘난 확실한 비둘기다’란 신호를 보낸 셈이다. 이제 확실한 비둘기는 둘(조동철, 신인석)인 것이냐?”(한은 한 관계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