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 판단 불신하는 상황서
제도·관행 만들어야 할 과제 안아
재계는 사실상 안도하는 분위기
국민연금 판단 불신하는 상황서
제도·관행 만들어야 할 과제 안아
재계는 사실상 안도하는 분위기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총수 일가의 갑질로 기업 가치를 훼손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을 물러나게 할 수 있을까?
30일 국민연금이 진통 끝에 ‘문제 기업’에 제한적으로 경영 참여를 할 수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실제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와 관행을 만들어가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이날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를 보면, 임원의 선임·해임 관련 주주제안 등 회사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영 참여 주주권’은 자본시장법 개정 등 제반 여건이 갖춰지기 전에라도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한 경우에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상장기업에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은 그동안 재벌 총수일가의 전횡과 승계 등에 눈을 감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민연금은 이날 “심각한 기업가치 훼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대한항공의 주가는 지난 1년 사이 22% 떨어졌다. 재벌 총수일가의 갑질 논란은 기업 이미지를 실추시켰고 영업에 타격을 입혔다. 30일 대한항공의 주가는 2만8200원,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8000원 넘게 떨어졌다. 대한항공 주식 1194만7287주(12.45%)를 보유한 국민연금 역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지금껏 총수일가 임원진에 대한 해임 요구 등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이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가 의결하면 경영 참여에 나설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실제로 대한항공 등 문제 기업에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국내 연기금 관계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국민연금이 독자적으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신뢰가 떨어진 상태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해 자본시장 내 관심이 크지 않은 것도 이것이 근본적인 변화가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재계는 경영 참여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쪽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데 대해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좀 더 부담스러워진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경영 참여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의결권 행사 사전공시를 사후공시로 수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경영권 참여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제도적 뒷받침이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기금운용위가 의결한 경우에만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은 임시방편이다. 경영 참여의 절차나 판단 기준 등이 없으면 국민연금이 향후 경영 참여를 할 때마다 매번 논란을 자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통해 “기금운용위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기금운용본부의 역량, 법령상의 제약 해소 등 제반 여건이 구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센터장도 “주주제안 등의 관행이나 문화가 그동안 없었던 것은 국민연금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시장의 문제다. 전문가를 육성하고 기관들의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일부 국내 기업이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 등으로 성장동력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 노후연금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 가치를 키우기 위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완 박현정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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