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 지급안을 거부하고 ‘소송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강수를 뒀다. 그동안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일괄 지급여부를 두고 갈등을 빚어왔다. 다만 삼성생명은 ‘고객보호 차원’에서 가입설계서에 예시된 최저보증이율(연 2.5%)시 예시금액에 못미치는 연금액이 지급된 경우 차액은 주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26일 오후 이사회 종료 직후 보도자료를 내어 “상속·만기형 즉시연금 상품의 처리 안건과 관련하여 심도있게 논의한 결과, 법적인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만큼 법원의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다만 “이사회는 “법원 판단과 별개로 고객보호 차원에서 고객에게 제시된 ‘가입설계서상의 최저보증이율시 예시금액’을 지급하는 방안을 경영진에게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한꺼번에 목돈(보험료)을 내면 보험사가 이를 운용해 매달 이익금(이자)을 생활연금으로 지급하고 만기 때 원금을 돌려주는 보험상품으로, 2000년대 초반 은행이자보다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어 인기를 모은 바 있다. 지난해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센터에 민원을 냈는데, 가입 때 들었던 최저보증이율 만큼은 지급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1억원짜리 즉시연금 상품의 경우 납입 원금에서 사업비 500만원을 제외한 순보험료 9500만원에 공시이율 또는 최저보증이율을 곱해 보험금을 지급하란 요구였는데, 회사 쪽은 만기 환급을 위해서는 사업비 500만원을 만들어야 하기에 보험금 일부를 준비금으로 따로 적립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분쟁조정위는 약관에 사업비 적립 부분 설명이 명확하지 않다며 민원인 손을 들어줬고, 삼성생명도 이에 동의해 올해 2월 조정안이 확정됐다.
이후 윤석헌 금감원장이 취임 두달 만인 지난 9일 발표한 ‘금융감독혁신 과제’ 가운데 ‘금융소비자 권익보호 강화’의 사례로 즉시연금 미지급금 사건을 들고 “일괄 구제하도록 지도하겠다”고 밝히며 문제가 커졌다. 보험업계 전체로 가입자가 16만명에 이르고, 삼성생명 4200억원 등 지급액이 8000억~1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업계 반발 속에서 삼성생명은 이사회를 열어 대응방침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날 ‘법원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강경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최저보증이율시 예시금액 지급’과 관련해 삼성생명 쪽은 “저금리 상황에서는 적립금을 더 많이 쌓아야하기 때문에, 가입설계서에 최저보증이율 적용시 예시된 금액보다 적게 지급된 사례가 있어 이는 지급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순보험료에 공시이율 예상치와 최저보증이율을 각각 곱하고 준비금까지 감안해 매달 연금액을 예시했는데, 실제 지급액이 최저보증이율을 곱한 예시액보다 적은 경우만 차액을 메워준다는 의미다. 지급액은 4200억원을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삼성생명의 예상 밖 강수에 당혹스런 표정이다. 금감원 보험과 소비자보호 파트는 이날 삼성생명 이사회 결정 뒤 부산한 모습을 보였고, 이상제 금융소비자보호처장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른 보험사들은 숨죽인채 상황 전개를 지켜보는 분위기다. 일괄 구제 때 지급액이 8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알려진 한화생명은 최근 분쟁조정위로부터 삼성생명과 동일한 결정을 통보받아 다음달 10일께 공식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추가지급액 600억원대로 알려진 교보생명은 아직 민원 제기가 없어 한발 비켜있는 상황이다.
이순혁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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