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케이디비(KDB)산업은행이 미 제너럴모터스(GM)와 한국지엠 경영정상화 지원 협상을 타결하며, 미 지엠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아태본부)를 한국에 신설하기로 했다. 정부는 국내 부품업체 연구·개발(R&D) 사업에 예산을 지원하고, 지엠은 글로벌 차원에서 부품 구매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미 지엠은 국내 투자·생산 의지를 드러내고, 정부는 이런 유인을 높여주는 지원을 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조처들이 얼마나 실속이 있을지에 대해선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한국지엠 관련 협상결과와 부품업체·지역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또 관련 예산안이 담긴 추경의 조속한 처리도 호소했다. 이날 김 부총리는 회의 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국지엠에) 경쟁력 있는 신차 배정과 고정비 절감 노력 등이 이행될 경우 매출원가율과 영업이익률이 점차 개선되면서 영업정상화와 장기적 생존이 가능한 것으로 실사기관이 분석했다”며, 지엠 아태본부 신설 등 협상타결 내용을 발표했다. 지난달 발표된 대로 지엠이 64억달러(6조9천억원), 산은이 7억5천만달러(8100억원)를 각각 부담하는 총 71억5천만달러(7조7천억원)의 자금지원 방안도 확정했다.
한국지엠 회생 방안은 정부·산은의 지원과 한국지엠을 독자생존 기업으로 장기 경영하겠다는 미국 지엠의 의지를 맞교환하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지엠의 협력 양해각서(MOU)를 통해 내년부터 미래차부품 등 연구·개발비를 국내 부품업계에 수백억원 상당 예산 지원하기로 했다. 또 지엠이 투자계획서를 수정해 외국인투자기업 지정을 재신청할 경우 이를 법 테두리 안에서 검토하기로 했다.
지엠은 대규모 투자·대출에 나서는 것 이외에 향후 10년간 한국 사업장 철수를 어렵게 하는 견제장치들을 받아들였다. 자산의 20% 이상을 처분할 때 지분율 17%의 2대주주인 산은이 비토권(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지엠의 지분매각은 향후 5년간 아예 제한되고, 이후 5년 동안은 지분율 35% 이상·1대주주 지위 유지 조건을 지켜야 한다. 또 글로벌 신차 기획과 배정 등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아태본부를 한국에 신설하기로 했다. 원래 싱가포르에 있던 아태본부는 호주 등 시장철수로 위축되며 기타지역본부로 기능이 흡수됐다가 이번에 한국에서 되살아나는 것이어서 얼마나 의미있는 기능을 할 수 있을지 좀더 지켜봐야 한다.
정부는 실사 결과 한국지엠의 부실 누적의 원인이 글로벌 수출물량 감소와 인건비 등 고정비가 지나치게 높은 데 있다고 봤다. 한국지엠의 생산물량은 글로벌 수출물량이 감소하면서 2007년 94만대 수준에서 지난해 52만대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반면 인건비는 2007년 1조1천억원에서 2017년 1조6500억원 수준으로 늘었다. 이번 노사협상을 통해 인건비는 향후 10년간 3조7천억원을 절감한다는 방안이 나온 상태다.
실사의 핵심 쟁점이었던 높은 매출원가율 논란과 관련해선 ‘이전가격’은 문제점을 찾지 못하고, 인건비와 본사 대출금리 인하 등을 통해 고정비를 줄여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한국지엠은 2016년 매출원가율이 93.1%로 국내 완성차 업체 평균(81.3%)이나 지엠 북미법인(84%)보다 10%포인트가량 높았다. 이 때문에 산은도 지엠 본사가 한국지엠에 넘기는 부품의 이전가격, 대출 금리 적정성, 인건비 등을 중점적으로 살피겠다고 밝혔던 터다. 하지만 정부와 산은은 이날 실사결과, 이전가격 등 거래는 다른 계열사와 유사한 수준이고 글로벌 기준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다만 대출금리는 연 4~5%를 3%대 중반으로 낮춰 부담을 줄이기로 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매출원가율이 경쟁사 대비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3~4년, 4~5년이 지나면 경쟁사와 비슷하게 떨어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과)는 “미 지엠의 아태본부 한국 신설과 글로벌 부품구매 확대나 정부의 국내 부품업계 연구개발비 지원은 나름 의미가 있다”면서도 “지엠의 아태본부가 원래 유명무실했던 만큼 한국 신설이 의미있는 수준이 될지, 글로벌 부품구매 확대도 선언에 그치지 않을지 향후 진행과정을 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정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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