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철 금융통화위원이 9일 서울 세종로 한국은행 본관에서 ‘인플레이션과 금리, 그리고 물가안정제’란 주제로 출입기자 오찬간담회를 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최근 수년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너무 낮춰 가계부채 증가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있지만, 제때 충분히 낮추지 않아 경기를 살리지 못했다는 반대의 평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저물가(와 저성장) 현상이 과거 한국은행의 의도치 않은 긴축적 통화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현직 금융통화위원의 지적이 나왔다.
조동철 금융통화위원은 9일 ‘인플레이션과 금리, 그리고 물가안정목표제’를 주제로 출입기자 오찬간담회를 열었다. 최근 수년간 1%대를 유지하고 있는 물가상승세의 원인에 대한 논의의 장이었다. 조 위원은 “2013년 이후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이 크게 낮아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라며 “이에 대해 합의된 결론은 없지만 몇가지 가설은 있다”고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세계적인 저인플레이션의 영향’을 첫번째 가설로 제시했다. 실제 10년물 국채와 물가연동국채 금리는 변화 방향과 수준이 미국 금리 움직임을 추종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2% 내외에 안정된 미국의 기대인플레이션에 비해 우리나라의 기대인플레이션은 2013~4년을 전후해 급락”했다며 2013년 이후 인플레이션 하락을 세계적 저인플레이션에서 찾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두번째 가설은 ‘고령화와 생산성 정체 등으로 대변되는 구조적 요인’이었다. 그는 “고령화와 생산성 정체는 실질 중립금리를 하락시키는 요인일 수는 있어도 인플레이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이해되기는 어렵다. 만일 그와 같은 현상이 관찰된다면 아마도 그것은 통화정책이라는 간접경로를 경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물경제의 구조적 요인에 의해 잠재성장률과 자연 실질금리가 낮아졌는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은 통화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긴축기조’를 형성해 인플레이션을 낮췄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분석은 ‘인플레이션 하락이 통화정책의 결과’라는 세번째 가설로도 이어졌다. 기대인플레이션 하락 폭보다 기준금리 인하폭이 작으면 ‘명목금리는 낮아졌어도 실질적인 기준금리는 오히려 올라 긴축기조가 형성되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더 하락하는 악순환’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조 위원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최초의 충격은 세계적 경기침체와 같은 외부적 요인일 수 있지만, 그 충격이 우리 경제의 인플레이션을 기조적으로 하락시킨 데에는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자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13년 당시 통화정책과 관련된 논의에서 낮은 인플레이션보다 ‘긴축 발작’(taper tantrum·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을 거론한 뒤 신흥국의 통화가치와 주가가 하락한 현상)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이유로 2013년 5월 기준금리가 2.5% 수준에서 동결돼 1년 이상 유지됐고, 디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기 시작한 2014년 중반 이후에서야 기준금리가 인하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자본유출 우려로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높아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금리를 낮추지 않는 긴축을 선택했고, 그 결과 현재의 저물가·저성장으로 이어졌다는 진단인 셈이다.
조 위원은 ‘의도치 않은 긴축 기조’를 현재 상황에 결부시켜 해석하는 것은 경계했다. ‘현재 통화정책이 긴축적이라고 (그래서 금리를 더 낮춰야 한다고) 보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는 “지금 기조가 긴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느 정도 완화적인지를 두고서는 (금통위원들 사이 의견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조 위원은 기획재정부 추천으로 2016년 4월부터 금통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실제 물가인상이 아니라 물가인상 전망에 근거한 금리 동결 또는 인상 논의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 왔으며, 가능하면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비둘기파’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순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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