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채권단이 에스티엑스(STX)조선해양 노사가 뒤늦게 타결한 자구안을 사실상 수용하기로 해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파국을 피했다. 이는 생산직 노조와 회사가 현재 인력 규모를 유지하는 대신 장기간 무급휴직과 임금삭감 등을 감수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중소조선사 불황은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어 앞으로도 ‘험로’가 예상된다.
10일 채권단 대표인 케이디비(KDB)산업은행과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와 채권단은 에스티엑스조선 노사가 마감시한을 18시간 넘겨 제출한 자구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에스티엑스조선 노사는 이날 오후 6시께 핵심 쟁점이었던 인건비 절감 합의를 담은 자구안과 노사 확약서를 산은에 전달했다. 여기엔 생산직 노조가 향후 5년간 연 6개월씩의 무급휴직과 임금삭감 등 고통 분담을 통해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하는 인건비 절감 수준을 맞춘다는 내용이 담겼다. 산은 관계자는 “세부 내용 검증과 관계기관 협의 절차 등이 일부 남았지만, 실제론 ‘자구안 수용’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앞서 한달 전 정부와 국책은행들은 중소조선사 처리 방안을 발표했다. 이때 에스티엑스조선에 대해선 대규모 인건비 감축을 포함한 자구안 합의를 전제로 ‘조건부 생존’ 판정을 내렸다. 정부 주도 컨설팅 결과는 회사의 고정비를 40% 감축해 ‘독자생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생산직 인건비는 75%를 감축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회사 쪽은 생산직 695명 중 500명을 희망퇴직이나 협력업체 소속 전환(비정규직화)으로 정리하려 했다. 이에 파업과 극한 대립이 이어졌다. 자구안 마감시한이었던 9일 자정 직후엔 산은이 ‘원칙적 법정관리’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사는 이후로도 마라톤협상을 이어간 끝에 간극을 좁히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해 회사 쪽은 “인력감축은 희망퇴직 등을 이미 신청한 144명만으로 한정하고 나머지 인력의 무급휴직·임금삭감 등을 시뮬레이션해 보니 산은이 요구한 ‘고정비 40% 감축’ 목표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왔다”며 “향후 노조가 동의하면 희망퇴직을 추가로 받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쪽은 “인력 대다수가 아웃소싱(협력업체 소속)으로 전환되면 조선소가 비정규직 공장이 되는 것이라 모든 조합원이 단호하게 반대했다”며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감내하더라도 고용은 보장받겠다는 원칙에 따라 ‘임금 대폭 상실’을 추가 양보안으로 제시해 합의를 모색했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파국은 피했지만,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은 녹록지 않다. 에스티엑스조선 관계자는 “생산직 인력 조정 규모가 줄어들면서 남은 인력의 고통분담 폭이 지나치게 커졌다”며 “연 6개월씩 무급휴직을 할 경우 일부 직원들은 월 100만원대 수입을 얻게 돼 생활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전체 고용 규모를 유지한 것은 나름 의미가 있으나, 약정된 고통 분담 기한이 5년이란 점을 고려하면 지속가능성에 의구심이 남는다.
게다가 경영정상화까진 여전히 험로가 남아 있다. 채권단 등 금융권이 2013년 이후 에스티엑스조선에 쏟아부은 돈은 8조3천억원에 이른다. 에스티엑스그룹이 해체되던 2013년에 에스티엑스조선이 자율협약에 들어갔고, 2016~2017년 이미 한차례 법정관리를 거쳤다. 이 과정에서 금융채무 6조9천억원이 출자로 전환돼 산은(41.92%), 엔에이치(NH)농협은행(20.24%) 등이 주요 주주다. 또 영업과 실적의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천억원대 영업적자가 예상된다. 정세라 조계완 기자
sera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