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할리우드 내 성폭력을 고발하며 시작된 ‘#미투 운동’이 월가로 번지고 있다. 금융회사의 성별 임금격차를 공개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계획을 밝히라는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주주행동주의 그룹이 굴지의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성별 임금격차를 공개하라고 주주제안 형태로 압박하자, 지난 1월 중순 씨티그룹을 시작으로 뱅크오브아메리카, 제이피(JP)모건 등 6곳이 이를 수용했다. 국내에서도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이 성별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운동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최근 한두달 새 월가에선 금융회사 6곳이 성별 임금격차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씨티그룹이 출발선을 끊었다. 지난 1월15일(현지시각) 씨티그룹의 인사담당 책임자 마이크 머리는 직원들에게 미국·영국·독일 직원 급여 자료를 공개했다. 씨티그룹이 밝힌 자료에서 미국과 영국, 독일은 성별 임금격차가 1% 정도였다. 여성이 남성 임금의 99%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씨티그룹은 “여성과 미국의 소수인종이 겪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적절한 임금 인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웰스파고·뉴욕멜런은행·마스터카드·제이피모건이 차례로 성별 임금격차를 공개했는데, 이들 기업에서도 씨티와 비슷한 1% 남짓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월가 금융회사들의 임금격차 공개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2016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미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18.1%에 이른다. 같은 해 미국 최대 구직사이트인 글래스도어 조사 결과를 보면, 금융분야 성별 임금격차가 6.4%인 것과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지난달 13일 <블룸버그>는 “씨티그룹과 웰스파고 등이 직위, 연공 서열, 지리 요인 등을 조정한 뒤 성별 임금격차가 1%라고 밝혔는데, 그 계산 방법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의심스러운 숫자”라고 비판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6곳 모두 기업의 임금격차 공개 결정은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를 중요하게 여기는 행동주의 투자사 ‘아르주나 캐피탈’의 주주제안을 통한 압박에 따른 결과였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월가에선 성별 임금격차 공개를 꺼렸다. 아르주나 캐피탈은 이런 변화가 일어난 데 대해 ‘미투 운동’에 공을 돌렸다. 이 회사의 나타샤 램 매니저는 최근 “2017년 초만 하더라도 월가는 성별 임금 문제가 이슈화되는 걸 꺼렸는데, 최근 사건들은 대형 은행들이 여성에게 동등한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시엔엔>(CNN)은 올해 1월 인사담당 임원 1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전체의 48%가 성별 임금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급여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조사를 진행한 재취업 서비스 기업 챌린저의 콜린 매든 홍보국장은 “많은 기업이 성폭력 관련 대응에 관심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임금 불평등’ 문제로 옮겨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미국 주주총회에서 성별 임금격차와 관련된 주주제안이 처음 나온 건 불과 3년 전이다. 2015년 이베이 정기주총에서 첫 제안이 나온 뒤, 주로 정보기술(IT) 기업과 금융회사 등을 대상으로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13건과 19건이 제기됐다. 2017년 주주제안으로 올라온 19건 가운데 17건은 성별 임금격차에 대한 보고서 발간을 요구했다. 2016년엔 이베이·인텔·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성별 임금격차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런 압력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 이사회는 2016~2017년 2년 연속 성별 임금격차와 계획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주주제안을 거부했다. 페이스북 쪽은 “페이스북의 다양성에 대한 노력을 고려할 때 (성별 임금격차 공개 등은) 주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했다.
구글은 소송에도 휘말렸다. 전직 구글 여직원 3명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적은 임금과 보너스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지난해 12월 주장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미국 노동부는 앞서 4월 이를 조사하기 위해 구글에 급여 관련 세부 정보를 요청했지만, 구글은 “성별 임금격차를 해소했다”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이런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의결권 자문기관 아이에스에스(ISS)도 ‘2018년 미국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에서 성별 임금격차를 줄이는 목표 또는 정책이나 성별 임금 현황과 관련된 보고서를 요구하는 제안에 찬성표를 권고하라는 새 기준을 마련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임현경 연구원은 “국내에서 사회책임경영 관련 주주제안이 상정된 바 없지만, 앞으로 몇년 내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미국 사회책임경영 관련 의결권행사지침을 국내까지 확대 적용할 경우 비슷한 양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돼 기업의 선제적 관심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한국(2016년 기준 36.7%)은 시장보다 정책적인 압력이 앞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오이시디가 성별 임금격차 통계를 발표한 2000년 이후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여성단체들은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3시 STOP’이라는 조기퇴근 시위를 전개할 예정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고 했을 때 여성은 오후 3시부터는 무급으로 노동을 하게 된다는 취지에서다. 지난해 12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차 양성평등 기본계획’에 ‘성별 임금공시제’가 들어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로드맵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를 실행에 옮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각계 의견을 듣고 차차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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