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8월 말까지 소각하기로 한 금융공공기관 보유 부실채권은 사실상 추심 활동이 정지된 채권들이다. 대부업체 등이 보유한 연체 채권이 언제든지 시효를 연장해 추심이 가능한 것과 달리, 공공기관이 보유한 부실채권은 실제 돈을 갚아야 할 부담은 없다. 하지만 연체기록으로 인해 금융기관의 신규대출을 받지 못하는 등 신용활동이 전혀 불가능했던 점이 해소되기 때문에 채무자들의 경제적 재기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가 31일 발표한 소각 대상 채권은 국민행복기금과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공공기관이 보유한 소멸시효완성채권과 파산면책채권이다. 규모는 국민행복기금이 소멸시효완성채권 9천억원과 파산면책채권 4조6천억원 등 총 5조6천억원이다. 대상은 73만1천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금융공공기관은 소멸시효완성채권 12조2천억원과 파산면책채권 3조5천억원 등 총 16조1천억원(50만명)이다. 국민행복기금은 연체채권을 사들일 때 대손충당금을 쌓기 때문에 채권 소각에 따른 비용은 별도로 들지 않는다. 다른 공공기관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국가 재정이 투입될 일도 없다.
하지만 정부가 연내 소각을 추진하고 있는 민간 금융회사의 소멸시효완성채권과 장기연체채권은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은행과 보험 등 민간 금융회사들은 연체채권을 비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자율적으로 채권을 소각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정부가 이들 채권을 사들여야 한다.
연말까지 민간 부문의 부실채권까지 소각되면 총 25조원(214만명) 규모의 채무가 완전히 사라진다. 이들의 금융거래 기록은 ‘소멸시효 완성’에서 ‘채무 없음’으로 바뀐다. 연체기록으로 인한 금융거래 이용 제한이 완전히 없어진다. 금융위는 도덕적 해이 논란에 대해 “소멸시효완성 채권은 법에 따라 채권자의 상환 청구권이 없고, 채무자는 상환의무가 없어 도덕적 해이와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민간 금융회사들이 법원의 지급명령 신청을 악용해 채권 시효를 연장하는 관행에도 제동을 걸 방침이다. 상법상 소멸시효는 5년이지만, 전자소송으로 간단하게 지급명령을 받아낼 수 있는 제도를 악용해 10년에서 15년까지 시효를 연장하는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채무자의 상환능력 등 시효 연장에 대한 기준을 금융업계가 자율적으로 만들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실제로 신한, 우리은행, 케이비(KB) 등 일부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채권 소각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정부는 국민행복기금을 포함한 장기소액연체채권(10년 만기 1천만원 이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정리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8월 중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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