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추진 배경이 ‘새 국제회계기준(IFRS4)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삼성의 주장에 금융당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서 특검의 공소사실을 깨기 위해 이런 주장을 하고 있지만, 정작 금융당국에는 전혀 다른 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열린 이 부회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방영민 삼성생명 부사장은 “IFRS4 2단계가 도입되면 수십조원의 자본확충이 필요하기 때문에 내가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제안했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은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에서 추진됐고,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면담 때 지원 약속을 받고 정유라씨의 승마 훈련 등을 지원했다며 이 부회장을 뇌물 혐의로 기소했다.
새 회계기준을 적용하면 보험사는 부채를 시가로 평가해야 하는데, 이 경우 부채 규모가 커지기 때문에 보험 고객에 대한 지급여력비율을 맞추려면 그만큼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방 부사장의 주장은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유상증자 등을 거쳐 자본을 늘리는 방법으로 새 회계기준에 대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생명이 1년여 전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새 국제회계기준 대응 방안’에는 금융지주회사 전환 관련 내용은 없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방 부사장이 1년 전에도 삼성생명에 있었는데, 당시 금융지주회사와 관련해 전혀 언급을 안하다 이제 와서 ‘내 아이디어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다”고 말했다. 삼성이 금융위원회에 검토를 요청하며 제출한 문건에도 국제회계기준 관련 내용은 빠져 있다. 이 문건은 금융지주회사 추진 배경으로 ‘금융지주회사 체제를 통한 지배구조 투명화’, ‘금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가 제시돼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자본을 확충하려면 대주주가 출자하거나 회사가 채권을 발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금융지주회사 전환은 비용도 많이 들고 법적인 제약도 많기 때문에 삼성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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