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휴가 때 자동차 사고를 당한 ㄱ씨는 석달 뒤 자동차보험료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상대방의 과실이 80%로 자신은 명백한 피해자인데도 가해자와 똑같이 보험료가 할증된 것이다. ㄱ씨는 당시 고속도로 2차선을 달리다가 1차선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가해 차량이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 ㄱ씨는 ‘과실이 거의 없는데도 보험료가 할증된 것은 불합리하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ㄱ씨처럼 자동차 사고 피해자인데도 가해자와 동일하게 보험료가 할증되는 일이 9월부터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10일 과실비율이 50% 미만인 운전자(피해자)의 보험료 할증을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행 할증제도는 과실비율과 상관없이 사고 크기(사고심도)와 빈도에 따라 보험료를 할증했다. 이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지 않고 보험료가 똑같이 올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았다. ㄱ씨의 경우 사고비율이 20%에 불과하지만 80%인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사고내용점수 2점이 가산돼 보험료가 2등급(13%) 올랐다. 하지만 금감원이 추진하는 개선안에 따르면 ㄱ씨의 보험료는 크게 오르지 않는다. 사고심도와 빈도를 반영해 사고내용점수를 산정할 때 최근 1년간 발생한 피해자(과실비율 50% 미만)의 자동차 사고 1건을 제외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의 보험료가 크게 오르지 않도록 한다. 사고가 여러 건이면 점수가 가장 높은 사고를 제외한다. 다만, 무사고자와 차별성을 유지하기 위해 3년간 보험료 할인은 적용하지 않는다.
개선안을 적용하면, 9년간 무사고로 보험료 41만원을 납부하던 ㄱ씨는 사고 이후에도 할증등급이 유지돼 종전보다 10% 정도 오른 45만원의 보험료를 내면 된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 따르면 ㄱ씨는 할증등급과 사고건수요율 등이 조정돼 종전보다 34%나 오른 55만원을 내야 한다. 가해자는 개선안이 시행되더라도 현행 제도와 마찬가지로 대폭 할증된 보험료를 내야 한다.
금감원은 개선안이 시행되면 자동차사고 피해자 약 15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의 보험료는 평균 12.2% 인하될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기준으로 151억원의 보험료가 줄어드는 셈이다.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보험사 수입이 해마다 0.1% 정도 줄어드는데 보험사의 손해율 개선 등으로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보험사와도 이미 협의가 됐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공청회 등을 거쳐 9월1일부터 새 제도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9월1일 이후에 발생한 사고를 기준으로 12월1일 이후 갱신되는 계약부터 할증 차등화가 반영된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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