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금융·증권

어? 여기 매도매수 수상하네?…주문낸 곳 캐기 시작했다

등록 2017-05-07 15:26수정 2017-05-07 20:57

금감원 특조국 ‘주가조작 추적기’
부산지검 특수부는 지난 1일 비엔케이(BNK)금융지주의 성세환(65) 회장을 170억원대의 주가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BNK금융지주는 부산을 기반으로 부산은행과 경남은행 등 8개 계열사를 보유한 국내 5위 규모의 금융지주그룹이다. 금융지주그룹이 회장을 정점으로 조직적인 주가조작에 나선 것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용을 먹고 사는 금융회사가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범죄를 저질러 금융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주가조작 사건이 적발된 데는 검찰조사뿐 아니라 금융감독원 특별조사국(특조국)의 집요한 추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금감원 특조국은 검찰의 특별수사부에 종종 비교된다. 고발·고소 사건이 아닌 인지 수사를 전담하는 검찰 특수부처럼 자체적으로 기획해서 조사를 벌인다. 2013년 8월 신설된 이래 주로 테마종목 관련 혐의 조사에 집중해왔다.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거짓말처럼 반등한 주가…수상한 기업을 찾아라

그동안 BNK금융지주에선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 회사는 2015년 11월17일 7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경남은행 인수와 엘시티사업 거액 대출 등 무리한 사업 확장 탓이었다. 유상증자 공시는 곧바로 주가 급락을 불렀다. 1만2600원이었던 주가가 공시 다음날 9720원으로 20% 이상 급락한 뒤 계속 떨어졌다.

그런데 좀처럼 하락세를 면치 못할 것 같던 주가가 이듬해 1월7일 8000원을 찍은 뒤 거짓말처럼 반등했다. 이튿날 주가는 8330원으로 뛰어 올랐다. 별다른 호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7~8일이 유상증자 발행가액 산정 기간이라는 게 유일한 ‘단서’였다. 신주 가격을 높이기 위한 ‘작전’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상증자한 상장사를 집중 모니터링하던 금감원 특조국이 이를 포착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상증자를 발표하면 일반적으로 주가가 떨어진다. 이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대주주가 공시 전에 주식을 미리 팔거나, 공시 후에 하락한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경우가 있다. 유상증자한 회사 중에서 이런 흐름을 보인 곳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는데 BNK가 딱 걸렸다”고 말했다.

부산 기반 BNK금융지주
유상증자 공시 뒤 추락세
발행가액 산정 기간 되자
거짓말처럼 반등
별다른 호재도 없는데?

현재가보다 비싸게 매도 줄잇고
매수 주문들이 차례로 받아 소진
차근차근 오른 주가
“전형적 고가매수 수법”

BNK의 이상한 거래는 주가가 반등하기 시작한 7~8일 이틀 동안 집중됐다. 8000원보다 비싼 가격에 나온 매도 주문들이 매수 주문에 의해 곧바로 거래가 성사됐다. 현재가보다 비싸게 부른 매도 주문들이 같은 가격의 매수 주문들에 의해 차례로 소진됐고, 그에 따라 주가도 차근차근 올랐다. ‘고가매수’로 매도 물량을 소진하는 전형적인 시세 조정 수법이었다. 특히 BNK는 당일 종가가 형성되는 오후 3시부터 30분 동안 매수 주문을 집중적으로 냈다. 종가가 오르면 다음날 매수세가 형성돼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을 노린 것이다.

금감원은 BNK에 대한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7~8일 이틀 동안 고가매수 주문을 집중적으로 낸 곳은 BNK투자증권의 거래처였다. BNK투자증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건설업체 등 14개 거래처가 모두 173억원을 동원해 BNK 주식 189만여주를 집중 매수했다. 시세 조정이 의심되는 주문이 115회로 전체 주문의 17.7%(호가관여율)에 달했다. 이 비율이 5% 이상이면 시세 조정 혐의로 검찰에 고발된다. 금감원 특조국은 성 회장을 불러 한차례 조사한 뒤 2017년 2월22일 성 회장과 BNK캐피탈 김아무개 사장(구속기소) 등 20명의 임직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 수사 결과, 성세환 회장은 유상증자로 주가가 급락하자 2015년 11월25일 계열사 대표들을 불러 거래처를 동원해 주가를 방어하도록 지시했다. 앞서 금융지주 내 티에프 팀은 보고서를 만들어 △기업 홍보활동 강화 △임직원 유상증자 참여 등의 주가 관리 방안을 성 회장에게 보고했다. 티에프 팀은 별도로 거래처를 동원해 시세 조정에 나서는 방법도 제시했다. 적발되면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주석’도 달았다. 성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시세 조정을 택했다. 금융지주의 총괄 아래 부산은행은 거래업체에 증권통장을 개설해 46개 업체에서 390억여원을 조달했다. BNK투자증권은 이 돈으로 자사주를 특정 시기에 집중 매입하는 방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리기도 했다.

매수자들 들춰봤더니
BNK투자증권 거래처 14곳
173억 동원해 189만주 매수
회장 등 20명 검찰고발

회장 “공매도 맞선 주가방어” 항변
검 “그래도 시세조정은 불법”

성 회장과 BNK의 임원들은 검찰에서 “당시 주가 방어에 나선 것은 대규모 공매도에 맞서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조처였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유상증자 공시 이후 외국인과 기관투자자를 중심으로 공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유상증자 발표 후 5일 동안 공매도 물량만 200만주가 넘었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주가가 떨어지면 다시 사들여 차액을 챙기는 투자기법이다. 주가가 단기간에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을 막는 순기능이 있다.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검사는 “공매도가 있다고 해서 시세 조정이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시세 조정은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말했다.

선거철 기승부리는 대선 테마주도 조사대상

불공정거래를 적발하는 금감원 특조국의 역할은 국경을 초월하기도 한다. 금감원은 외국인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해외 당국과 다자간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고 있는 ‘대선 테마주’도 특조국의 주요 조사 대상이다. 지난 1월6일 특조국은 정치테마주 특별조사반을 꾸렸다. 보통은 대선이 있는 해의 연초부터 특별조사반을 꾸려 1년 가까이 활동을 한다. 정치테마주는 기업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가 급등락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큰 투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8대 대선 때는 1년8개월 동안 150개가 넘는 테마주를 집중 조사해 불공정거래 행위자 47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만큼 대선 테마주가 극성을 부렸다.

금감원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이번 대선은 지난 대선에 견줘 대선 테마주의 폐해가 크지 않은 편이다. 물론 테마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 출산 장려 등 대선 후보들의 공약 관련 정책 테마주의 주가변동률이 16.7%로 정치인 테마주(16.4%)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시장지수 평균 변동률(3.3%)의 5배 수준이다.

특조국과 함께 자본시장을 감시하는 조사 1, 2국은 1988년 8월 출범한 ‘증권감독원 검사4국’을 모태로 한다. 그동안 자본시장을 둘러싼 환경은 크게 변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가 조작 수법도 날로 발전하기 때문에 적발하기가 점점 어렵다”고 말했다. 금감원 조사국 규모는 선진국 금융감독기관에 견줘 차이가 난다. 미국(SEC)과 영국(FCA)의 금융감독기관은 불공정거래 조사 조직이 전체 인원의 30~50%를 차지하지만, 금감원은 5% 정도에 그친다.

조사국은 금감원 직원들이 선호하는 부서는 아니다. 검찰 특수부가 검사들의 출세 코스로 인정받고 있는 것과 다르다. 금감원 조사국 출신의 한 간부는 “증권감독원 시절 주식 거래가 전산화되지 않았던 때에는 수기로 작성된 자료를 일일이 대조해가며 불공정거래를 잡아냈다. 그 당시엔 어음의 배서만 보고서도 횡령을 적발해내는 베테랑 직원들이 있었다. 자본시장을 교란시키는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조사 경험이 풍부한 전문 인력 확보가 기본이다”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home01.html/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주택공급’ 정책 일정 등 줄줄이 취소…“대통령이 공직사회 멈췄다” 1.

‘주택공급’ 정책 일정 등 줄줄이 취소…“대통령이 공직사회 멈췄다”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뒤 경제수장 긴급 심야 회의 2.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뒤 경제수장 긴급 심야 회의

철도노조 5일부터 총파업…“전철·KTX, 평소의 70%만 운행” 3.

철도노조 5일부터 총파업…“전철·KTX, 평소의 70%만 운행”

15년 농심 연구원이 추천한 ‘라면 가장 맛있게 먹는 법’ 4.

15년 농심 연구원이 추천한 ‘라면 가장 맛있게 먹는 법’

화장품 ‘빅2’ 점유율 50% 아래로…“유행 속도 못 따라가” 5.

화장품 ‘빅2’ 점유율 50% 아래로…“유행 속도 못 따라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