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금감원 사칭 보이스피싱 최대 피해자
전체의 74%…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10배 많아
구속 등 고압적 용어에 심리적 압박 느낀 탓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회사원 ㄱ씨(37)는 최근 검찰청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남성은 “은행 계좌가 명의 도용됐으니 계좌에 있는 돈을 안전하게 보호하려면 예금을 인출해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보관해야 한다”고 했다. ㄱ씨는 이 남성이 금융·법률 전문 용어를 구사하고,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고 검찰 수사관으로 철석같이 믿었다. 그는 통장에 든 4천만원을 찾아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3번 출구 앞으로 가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또다른 남성에게 돈을 건넸다. 이 남성들은 모두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사기범이었다.
ㄱ씨와 같은 20~30대 사무직 여성들이 수사기관과 금융당국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5일 지난해 20~30대 여성의 수사기관·금감원 사칭 범죄 피해건수가 2152건으로 전체 피해건수의 74%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피해금액은 175억원으로 전체 247억원의 71%에 이른다. 특히 같은 연령대의 남성(19억원)에 견줘 10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20~30대 여성들의 피해가 큰 이유로, △남성보다 사회 진출이 빨라 결혼자금 등을 위해 모아둔 목돈이 많고 △사기범의 ‘범죄사건 연루’ ‘구속영장 청구’ 등 고압적 분위기 연출에 심리적 압박을 쉽게 받으며(몰입 효과) △권위와 전문 용어로 포장된 사기범을 쉽게 믿는 경향 등을 꼽았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