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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구멍가게 주인, 생활비 절반은 빚 갚는 데 쓴다

등록 2017-03-09 18:08수정 2017-03-09 22:01

Weconomy | 1인 자영업자의 위기
혼자서 장사하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매달 갚아야 할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액이 2012년 이후 4년 새 무려 2배나 늘었다. 1인 자영업자 가구의 소득은 크게 늘지 않으면서 빚 상환 부담은 과거보다 훨씬 커지는 실정이다. 200만가구가 넘는 이들은 처분가능소득의 거의 절반을 빚 갚는 데 쓰는 탓에 한국 경제의 소비 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금리상승 속도가 빨라질 수 있어 부채 취약계층이 ‘연체의 덫’으로 몰릴 위험이 커지는 것도 우려된다.

그래픽 김승미
그래픽 김승미

최아무개(61)씨의 채소 가게는 전통시장에서도 목이 좋은 곳에 있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다니는 길가에 있으니까, 21년 전 처음 가게 얻을 땐 권리금을 2천만원이나 줬어요.” 경기도의 한 전통시장 ‘ㅇ야채’를 혼자 운영하는 최씨에게 지난해 매출을 묻자 한숨이 돌아왔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에 활기가 있었는데 이젠 자고 나면 가게가 하나씩 줄어들어요. 주변에 대형마트부터 중소형 마트까지 많이도 생겼으니까요. 안 팔려서 시든 채소들 보면 속만 상합니다.”

직원없이 채소가게 운영하는 최씨
매출 2천만원…“인건비도 안나와”

최씨네 채소 가게의 지난해 매출은 2천만원 수준이다. “주말 없이 일하는데 인건비도 남지 않아요. 가게 월세 70만원에 대출이자 내고 나면 생활비도 없어, 결국 대출을 더 내어 연명하고 있습니다.” 최씨는 은행에서 주택청약예금을 담보로 한 대출과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썼고, 상호금융권에서도 사업자 신용대출을 받았다. 최근엔 신용카드 대출도 받았다. 지난 설 명절 직전엔 은행에서 개인사업자 신용대출로 1천만원을 받으려다가 거절당했다. “은행에서 대출이 안 된다니 앞으로는 어찌해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어요.” 최씨는 매달 40만원의 대출 원리금을 갚아야 하지만, 지금 소득으로는 버겁다. 20여년을 바친 채소 가게와 함께 늙어가려 했지만 소득은 줄고 빚만 늘어나다 보니 절망감만 깊어진다.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200만이 넘는 영세 자영업자 가구의 빚 상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소득 증가는 기어가는데 부채 증가만 날아오르고 있는 탓이다. 9일 <한겨레>가 국회의장 정책수석실을 통해 받은 2012~2016년치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금융부문·1만가구 표본)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인 자영업자의 가구당 연간 원리금 상환액은 지난 4년간 993만원에서 1959만원으로 갑절(97%) 가까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뺀 처분가능소득은 3513만원에서 4321만원으로 2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부채 부담이 소득보다 무려 다섯배나 빠르게 증가했다는 의미다.

적어도 직원을 한 명 이상 둔 고용주 자영업자 가구나 임금근로자 가구는 좀 더 사정이 나았다. 같은 기간 원리금 상환액 증가율이 고용주 자영업자는 48%였다. 또 상용직뿐 아니라 임시·일용직을 모두 포함하는 임금근로자는 증가율이 87%로 높았으나 1인 자영업자보다는 낮았다.

1인 자영업자 연간 원리금상환액
4년새 ‘993만원→1959만원’ 2배
같은기간 소득은 23% 증가 그쳐
“소득대비 갚을 빚 많아 연체의 덫”

정부가 가계부채 급증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이자만 갚을 게 아니라 원금도 처음부터 분할 상환하는 정책(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펴면서 영세 자영업자 가구의 빚 상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1인 자영업자 가구의 연간 원금 상환액은 2012년 665만원이었으나, 2015년 1189만원으로, 2016년 1606만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이자 상환액은 329만원에서 353만원으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2년 이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줄곧 이어져 저금리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준협 국회의장 정책비서관은 “정부가 지난해부터 원리금 균등 분할상환 정책을 크게 강화하면서 1인 자영업자 가구에 부담이 많이 실렸다”고 짚었다.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은 지난해 은행(2월), 보험사(7월)에 적용된 데 이어 단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처분가능소득 가운데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이르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보면, 영세 자영업자 가구가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에 내몰렸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1인 자영업자 가구의 이 비율은 2012년 28.3%였으나 지난해 45%로 급증했다.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낸 뒤 자유롭게 소비하거나 저축할 수 있는 돈의 절반 가까이 빚 상환에 써야 하는 셈이다.

이준협 정책보좌관은 “디에스아르 비율이 40%를 넘으면 쓸 돈이 모자라 갚아야 할 원리금을 연체할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으로 봐야 하는데, 영세 자영업자 가구가 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특히 미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시장금리 상승이 이어졌고,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예상보다 더 높일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1인 자영업자 가구는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 대출 비중이 큰데다 소득 대비 빚 상환 부담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어려움이 깊어질 수 있다. 이들의 빚 취약성은 가계부채 위험의 약한 고리인 셈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저금리 시대에 자영업자 대출을 늘려왔던 저축은행과 상호신용금고 등 비은행권의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며 “단순히 대출 건전성을 강화하는 접근만 할 게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의 빚 상환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지 고민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류이근 임지선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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