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달 14일 출시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선점을 위한 은행과 증권사의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자 금융당국이 24일 경고에 나섰다. 이날 오후 서울 시내의 한 은행영업점에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관련 펼침막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을 앞두고 은행과 증권사, 은행 간 선점 경쟁이 과열 양상을 띠면서 소비자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전 유치 계좌 수를 할당받은 금융회사 일부 직원들이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 소비자들한테 투자 위험도 알리지 않은 채 가입을 권유하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지만, 금융소비자 단체는 방지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가입 시기를 늦추자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새달 아이에스에이 계좌 출시를 앞두고 진작부터 자동차, 골드바 같은 고가의 경품을 내걸고 계좌 유치 경쟁에 나선 상황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계좌만 만들 수 있다 보니 선점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직원들한테 개인별로 계좌 100개를 사전에 유치하라거나 가입 시작 당일인 새달 14일에는 10~50명의 가입자를 받으라는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할당량이 만만치 않다 보니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이나 동창회 모임 등에서 제대로 된 상품 설명도 없이 인정에 호소해 가입자를 유치하기 바쁜 상태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김아무개(32)씨는 24일 <한겨레>에 “아이에스에이에 담길 상품 구성조차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할당량을 채우라고 해 일단 창구를 찾는 고객들한테 부탁을 하고 있는데, 나중에 이들이 손해를 보게 될까 두렵다”며 “신용카드나 모바일뱅킹 가입을 권유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이라고 털어놨다. 불완전판매가 우려스럽지만 실적 압박에 권유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처지라는 얘기다.
일부 은행원들은 사비를 털어 1만원 정도를 넣어줄 테니 계좌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금융실명제도 어겨가며 친척이나 지인들의 신분증 사본과 원천징수영수증 등 관련 서류를 팩스 등으로 받아 계좌를 만드는 일도 있다. 시중은행의 또다른 직원은 “은행이 직원들에게 편법을 행하도록 조장, 방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은행원들은 이미 개인별로 많게는 수십건씩 계좌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만과 우려가 커지자 금융위원회는 이날 임종룡 위원장 주재로 ‘아이에스에이 준비상황 점검 회의’를 열어 은행과 증권사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금융위는 특히 금융회사들이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음에도 충분한 설명 없이 ‘묻지마 가입’을 유도하는 등의 과열 경쟁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아이에스에이 불완전판매 예방 대책을 마련해 출시 전후로 상황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출시 이후 불완전판매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 금융감독원과 함께 미스터리 쇼핑, 불시 점검 등을 강도 높게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소비자 단체에서는 아이에스에이 가입 시기를 불완전판매 방지 대책을 마련한 뒤로 미루자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소비자원은 “초기 시행 단계에서 불완전판매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예상 되는 만큼 가입 시 녹취 의무화, 금융사 배상 책임 등 소비자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 보완 없이 시행할 경우에는 불매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박승헌 김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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