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우리은행장에 ‘서금회’(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인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청와대와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1일 이순우 현 우리은행장이 돌연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날 금융당국과 은행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우리은행 행장추천위원회의 본격적인 선임 절차가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서금회 멤버인 이광구 우리은행 부행장이 차기 행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확인해주듯 이 행장은 이날 오후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연임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행장은 “민영화라는 최대의 숙명적 과제를 안고 은행장 소임을 맡은 지 벌써 3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우리금융그룹 계열사 매각 등의 순차적인 민영화 작업 끝에 지금 이 순간까지 왔다”며 “이제 소임은 다한 것으로 여겨져 회장 취임 때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 행추위는 2일 이 부행장을 차기 행장 후보로 공식 선정하고, 5일 면접을 거쳐 9일 임시 이사회에서 확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은행은 정부(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다.
애초 차기 우리은행장은 이 행장이 연임하는 방안이 유력했지만, 지난달 초순께부터 이 부행장이 빠르게 부상하면서 내정설까지 흘러나와 논란이 커졌다. 우리은행의 한 간부는 “최소 열흘 이상 전부터 기류가 완전히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이 부행장의 급부상 배경에 서금회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서금회는 박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탈락한 뒤, 금융권 서강대 동문들이 만든 모임으로 알려져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영향권에 들어 있는 금융기관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잇따라 꿰차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각각 지난 3월과 5월 선임된 이덕훈 수출입은행장과 정연대 코스콤 사장, 지난달 지명된 홍성국 대우증권 신임 사장 후보자 등이 서금회 멤버다.
우리은행장의 선임 과정 자체도 철저히 ‘밀실’에서 이뤄지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리은행 행추위는 회의가 열리는 장소는 물론 날짜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행추위 구성과 관련해서도 사외이사 3명과 외부 전문가 3명, 정부 대표인 예금보험공사 관계자 1명 등 7명으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만 공개할 뿐, 행추위원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대외비로 하고 있다. 또 2011년 행장 선임 때는 행장 후보자에 대한 공모 절차를 거쳤으나, 이번엔 행추위에서 바로 후보자를 추천해 차기 행장을 선임하는 방식으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앞서 하영구 은행연합회장의 선출 과정도 내정설로 논란을 빚었다. 차기 회장을 추천하는 이사회 구성원들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지난달 중순 금융당국발로 하 회장의 내정 사실이 기사화됐고, 금융노조의 강력 발발에도 결국 지난 28일 차기 회장에 선임됐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선 관피아(관료+모피아) 낙하산은 배제됐지만, 금융당국 입맛에 맞는 민간 출신을 내려꽂는 ‘신종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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