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불공정계약 논란이 일었던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관련 소송에서 처음으로 기업 쪽의 손을 들어 줌으로써 현재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는 나머지 200여개 회사의 관련 판결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1부가 지난 23일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키코에 가입했던 테크윙 등 4개 기업에 끼쳐진 손해액의 60~70%를 은행 쪽에서 배상하도록 판결한데 대해 김성묵 변호사는 “특정 재판부의 튀는 판결이 아니라 관련 법리를 심도있게 연구해 온 법관이 내린 결론인 만큼 다른 재판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판결을 주도한 최승록 부장판사는 금융파생상품과 관련한 판사 연구모임을 주도할 정도로 상당한 전문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법조계 인사는 “최 부장판사는 판결을 앞둔 지난 6월에도 전문가들을 초대해 키코에 대한 집중적인 토론을 벌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법원은 지금까지 키코 관련 피해를 입은 195개 중소기업들에게 대부분 패소 판결을 내리거나 피해액의 30% 가량만을 배상받도록 했다.
한 변호사는 “이번 재판부는 키코 상품이 은행보다 기업에게 더 큰 피해가 가도록 돼 있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고, 여기에 더해 키코를 설계하고 판매·권유한 곳이 은행인 만큼 책임도 더 져야 한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법원이 키코상품에 가입해 한번이라도 이익을 누렸던 적이 있는 기업들에게는 은행의 배상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던 기존 법원의 태도도 뒤집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절망적인 상황에서 소송에 나서지 않았던 피해 중소기업 500여 곳도 한가닥 희망을 걸 수 있게 됐다.
패소한 은행들은 항소 뜻을 내비치면서도 긴장하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아직 정확한 판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쟁점이 다르지 않은데도 결론이 (이전과)너무 달라 당혹스럽다”면서 “항소 여부는 판결문을 받아 본 뒤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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