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영업정지 저축은행 사외이사·감사도 ‘권력기관 낙하산’
사외이사도 ‘거수기’ 여전 안건 반대 단 한건도 없어 ‘감시 소홀’ 책임 물려야
사외이사도 ‘거수기’ 여전 안건 반대 단 한건도 없어 ‘감시 소홀’ 책임 물려야
‘감사원, 금융감독원, 국세청,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의 옛 이름)….’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의 감사와 사외이사진의 명단에서는 이런 힘센 권력기관 출신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면, 저축은행 업계 3위이며 상장회사인 제일저축은행에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이 사외이사로 일했던 것으로 돼 있다. 이 전 원장은 부산 저축은행 사태로 파장이 확산된 직후인 5월 말 중도 퇴임했다. 이 밖에 제일2저축은행에선 손영래 전 국세청장이 사외이사로 올라 있는 등 권력기관 출신들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들 저축은행의 감사가 대부분 금감원 출신이라는 점이다. 토마토저축은행 신창현 감사, 제일저축은행 김상화 감사 등 7개 중 5개 저축은행의 감사가 금감원에 몸담았던 이들이다. 금융기관들을 감독해야 하는 금감원 출신들이 감사를 맡았다는 점에서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본연의 감시 업무보다는 친정인 금융당국의 칼바람을 막아주는 ‘병풍’ 노릇에 열중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에이스, 제일, 토마토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금감원의 경영진단 뒤 급격하게 떨어진 게 이런 맥락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저축은행 부실 문제에서 감사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전문성에서 한계를 띠는데다 비상근인 사외이사와 달리 상시적으로 감시를 해야 할 처지라는 점에서다.
영업정지 뒤 해당 저축은행들에선 동일인 여신한도 위반 등 상식을 뛰어넘는 불법 영업 행위가 저질러졌다. 사외이사나 감사들이 제 몫을 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권력기관 출신들을 위한 자리보전용이며, 거수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해묵은 비판이 다시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사외이사들의 거수기 노릇은 해당 저축은행들의 사업보고서에서 뚜렷하게 확인된다. 1월6일 제일저축은행은 이사회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관련 규정 개정에 관한 안건을 올렸다. 집행부 임원은 물론 사외이사 누구도 여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분기보고서에 실려 있는 다른 안건들에서도 반대 의견은 전혀 없었다. 다른 저축은행들에서도 사정은 같았다.
비상근 사외이사들은 회의 참석을 명분으로 수천만원의 ‘거마비’를 받는 혜택은 누리면서도 책임 부담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주재성 금감원 부원장은 20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영업정지 뒤에도) 사외이사들이 고발 대상에 오른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며 “비상근 사외이사들로선 경영진의 불법 행위를 알아차리기 힘든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동일인 여신한도 위반 등 불법 행위는 금감원의 계좌 추적을 통해서나 겨우 밝혀낼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선웅 소장은 “사외이사로선 불법, 탈법 영업 행위를 파악하기 힘들 수 있다”면서도 “일정 규모 이상의 대출은 이사회를 거치게 돼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외이사들이 감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한만 있고 의무는 없다면 금융기관 이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규정을 정비해서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사외이사나 감사들이) 책임에 따라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형사 처벌을 강화하는 등 사후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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