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락세를 보여왔던 달러/원 환율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연초 국내외 기관들이 앞다퉈 900원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을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딴판이다. 이미 1040원대까지 올라왔지만 시장에서는 더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최근 유가까지 급등한 것이 원인이다. 수출업체의 숨통은 조금 트이겠지만, 이제는 물가상승이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환율 연초 수준까지 상승= 4일 달러/원 환율은 전주말보다 11.90원 폭등한 1043.4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 1월11일 1045.10원 이후 최고 수준이다. 연초에 1035.10원으로 시작한 달러/원 환율은 1월10일 고점(1053.70원)을 찍은 뒤 5월2일 997.00원까지 내려갔으나 6월 들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이날 4시 현재 달러/엔은 111.55엔까지 상승하고, 유로/달러는 1년2개월만에 1.2달러가 깨져 1.1944달러까지 내려가는 등 전세계적으로 달러 매수세가 강했다. 엔/원은 100엔당 935.11원 수준이다. 구길모 외환은행 딜러는 “지난 월말(30일)에 수출업체의 네고물량이 나왔는데도 상승세로 끝났고, 네고물량 부담이 없는 월초가 되자 더 탄력을 받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상승추세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달러 강세에 고유가까지 겹쳐= 사실 달러는 이미 연초부터 유로화나 엔화에 대해 강세를 보여왔다. 조휘봉 하나은행 외환딜러는 “그동안 유독 원화만 버티고 있었다”며 “지금까지 미진했던 것이 한꺼번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전세계적 달러 강세는 올해 들어 유럽이나 일본보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견조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초 유럽헌법이 부결되면서 유로화는 정치적인 불안까지 반영돼 본격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원 환율 하락의 주요한 동력이었던 중국의 위안화 절상이 자꾸 늦어지는 것도 달러/원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구길모 딜러는 “이제 위안화 절상이 재료로서 힘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유가 급등은 달러 강세 추세에 기름을 부었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연구원은 “고유가는 미국보다 아시아나 유럽 경제에 더 큰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달러화 강세에 힘을 싣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적으로도 고유가는 환율 상승에 큰 호재다. 고유가는 무역수지를 악화시키고 정유업체의 달러 수요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구길모 딜러는 “고유가가 계속되면서 환율상승이 당연하다는 심리가 시장에 퍼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환율 11.90원↑ 단숨에 1040원대로
미 금리인상 · 고유가에 달려 강세전환
“미 적자 해소 안되면 추세 안바뀔 것”
물가 상승땐 내수회복 ‘덫’될 수고 하지만 최근의 달러 강세가 추세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오재권 한국은행 외환시장팀장은 “달러화약세가 별 효과가 없자 미 정부가 약달러 정책에서 강달러 정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수출업체들이 증권사나 민간연구소의 예측만 믿고 환율이 조금만 올라가도 물량을 내다 팔았다”며 “이제 매물벽이 얇아졌고 공급 위주의 구도가 깨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학균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위안화절상이 아니고서는 달러화약세를 근본적으로 되돌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고유가-고환율’ 경기회복 덫 될 수도= 환율 상승은 일단 수출업체들에게는 희소식이다. 수출업체들은 올해 환율 하락으로 인한 채산성악화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국내 경제 전체를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번 환율 상승이 고유가와 겹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기름값이 올라가는데 환율까지 올라가면 부담이 더 커진다. 이는 물가상승을 부추겨 자칫 이제 막 기력을 차리려는 내수경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박석현 씨제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달러/원 환율 상승으로 일부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개선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엔/원 환율이 뚜렷한 조정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지속된 원자재 가격상승에도 국내 물가가 안정을 보였던 것은 원화 강세 때문이었다”며 “최근 유가가 상승하고 있는데 원화마저 약세를 보이면 수입물가 상승부담이 급격이 커지면서 물가가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오재권 팀장은 “환율이 조금 더 상승해야 전체적인 국민경제 차원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며 “특히 중소수출기업을 위해서는 더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 우려에 대해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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