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환율 추이
‘엔 강세’ 원금 급증에 외화대출 만기연장 금지 ‘비명’
한은 규제완화 검토…‘1년 한시 만기연장’ 허용 예상
한은 규제완화 검토…‘1년 한시 만기연장’ 허용 예상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아무개씨는 지난 2006년 3월 은행에서 운전자금 용도로 엔화대출을 10억원 받았다. 대출금리는 2.5% 정도로 원화대출보다 훨씬 쌌다. 원-엔 환율은 100엔에 820원대였다. 원-엔 환율은 계속 내려가는 추세였기 때문에 나중에 엔화로 환산해서 갚아야 하는 돈은 더 적어질 것 같았다. 만기는 1년마다 연장해야 했지만 은행 쪽에서는 10년까지 계속 연장해줄 수 있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정씨처럼 저금리와 환차익을 노리고 외화대출을 받는 중소기업·개인사업자들이 많아지면서 외채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국외에서 사용하는 실수요 자금과 제조업체의 시설자금 외에는 외화대출의 신규 취급과 만기 연장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하반기 만기가 돌아온 대출자들은 어쩔 수 없이 금리가 3배 가량 높은 원화대출로 갈아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문제는 올해 들어서 더 커지기 시작했다. 원-엔 환율이 급등하기 시작하면서 갚아야 할 돈이 20~30%씩 늘어나게 된 것이다. 원화대출로 갈아타려고 해도 대출원금이 그만큼 불어난다. 정씨는 “지금 원화로 갈아타면 원금만 2억4천만원이 늘게 된다”고 말했다. 20일 현재 원-엔 환율은 100엔당 1018.20원까지 올라온 상태다. 정씨가 대출을 받을 당시보다 25% 정도 급등한 것이다. 원-엔 환율은 2004년 이후 내려가기 시작해 지난해 7월9일 744.82원으로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씨처럼 원-엔 환율이 폭등한 이번 달 들어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자들은 한은에 만기연장을 거세게 요구하고 나섰다. 정씨는 “1~2년간 유예기간을 주면 그동안 차분히 자금운용계획을 세워서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도 기업 운전자금에 대한 외화대출 만기연장을 허용해줄 것을 뼈대로 하는 건의문을 19일 한은에 제출했다. 현재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약 5300억엔(한화 5조6000억원)에 이른다.
한은은 결국 20일 한시적 만기 연장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환율이 급등하면서 외화대출을 받은 대출자들의 상환 부담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전자금 외화대출 규제라는 큰 틀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1년정도 한시적으로 만기연장을 허용해주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 1월에도 외화대출 용도제한을 일부 완화해 비제조업체에 대한 시설자금 외화대출을 허용한 바 있다.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환율은 언제든 양 방향으로 움직일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지난해까지 기업과 개인들은 원화강세 추세가 한없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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