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투자가 예상되는 ‘차이나 머니’ 규모
2천억달러 국부펀드 등 내년 1분기 본격 한국투자 나설 듯
달러 대출시장에선 이미 큰손…국내 금융계 새 돈줄 기대
달러 대출시장에선 이미 큰손…국내 금융계 새 돈줄 기대
채권 애널리스트 ㄱ씨는 지난달 한 중국계 은행의 한국 지점으로부터 프레젠테이션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주제는 ‘국내 금리 전망’이었다. 그가 중국계 은행으로부터 요청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중국계 은행 자금부 관계자들이 프레젠테이션 뒤 ‘한국 채권시장에 투자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기업 대출 정도만 해온 중국계 은행이 채권 투자 계획을 밝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전병서 한화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지난달 중국 3대 증권사 중 하나인 선인왕궈 증권사가 연 리서치 포럼에 연사로 초대됐다. 중국 전역에서 모인 1천여명의 펀드매니저들이 한·미·일 전문가들로부터 각국 시장 전망을 듣는 자리였다. 전 본부장은 “중국 기관투자가들의 국외 투자에 대한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느낄 수 있었다”며 “펀드매니저들이 ‘워런 버핏이 어떤 한국 주식을 샀는가?’ ‘한국 제조업체 주가수익비율(PER)은 왜 중국보다 낮은가?’ 같은 질문들을 쏟아내며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몇몇 기관투자가들은 이미 한국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큰손’으로 부상한 ‘차이나 머니’가 국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도 새로운 돈줄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30일은 며칠 동안 급등하던 채권 금리가 겨우 진정세를 보인 날이다. 이날 시장 심리를 반전시킨 재료 중의 하나는 중국 ‘국부 펀드’가 국내 채권을 사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한 채권 펀드매니저는 “만약 중국계 자금이 들어온다면 탄탄한 매수 주체가 하나 늘어난 셈이어서 시장에 호재”라고 말했다. 도보은 금융감독원 금융산업시장팀장은 “중국계 자금이 들어왔는지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안선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그간 중국 기관투자가들이 홍콩 증시에 주로 투자했지만 앞으로는 아태 지역으로 투자 대상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나 인터내셔널’이라는 자산운용사가 10월부터 모집하기 시작한 ‘차이나 인터내셔널 펀드’는 아태 지역 5개국(한국·홍콩·싱가포르·인도·오스트레일리아)에 투자하는 펀드다. 이 펀드에는 3조7천억원의 돈이 몰렸다. 안 연구원은 “지난 9월부터 이런 펀드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며 “연말까지 국외 펀드 모집액이 5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감원 자료를 보면 국내 주식시장(코스피+코스닥)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 중 홍콩 국적의 자금은 지난해 말 1조9천억원에서 지난달 말 2조8천억원, 중국 국적은 지난해 말 25억원에서 지난달 말 731억원으로 늘었다. 전병서 본부장은 “중국 투자가들이 내년 1분기부터 국내 우량주를 본격 매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화자금시장(달러를 단기로 빌리거나 빌려주는 시장)에서는 이미 중국이 큰손이다. 한국자금중개의 한 관계자는 “중국계 은행들이 달러가 풍부해 지난해부터 공급 물량을 많이 늘렸다”며 “달러시장에서 주요 플레이어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은 중국계 은행 여러 곳과 크레딧 라인을 개설해두고 직접 달러를 빌리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중국계 은행들이 자체 유동성 확보를 위해 달러 공급을 줄여 국내 은행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도보은 팀장은 “중국 금융기관들이 풍부한 달러 유동성을 운용하는 대상 가운데 한 곳이 한국”이라며 “중국계 자금이 몇십억달러 수준은 들어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차이나 머니는 ‘오일 머니’와 함께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유동성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총아’다. 중국의 외환 보유액은 1조4천억달러에 이른다. 지난 9월에는 2천억달러 규모의 국부 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공식 출범했다. 중국 내 QDII(외국 주식·채권 투자 자격을 가진 기관투자가)의 국외 투자 한도액도 10월 현재 470억달러에서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차이나 머니가 세계 주식·채권·부동산 등을 왕성하게 사들이는 과정에서 국내 금융시장도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안선희 양선아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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