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잉여금의 대안금융 재원
청산시 잉여금 5조~9조원…현행법상 은행이 ‘꿀꺽’
“금융소외자에 혜택줘야” 정치권·학계서 한목소리
“금융소외자에 혜택줘야” 정치권·학계서 한목소리
휴면예금에 이어 공적자금 잉여금을 ‘대안 금융’의 재원으로 이용하자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계와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등 좌우를 막론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어 앞으로 대안금융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9일 금융노조·민생포럼·대안연대회의 공동 주최로 열린 ‘금융 소외, 어떤 재원으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발제자인 양준호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외환위기 이후 심화되고 있는 금융 양극화 해소를 위한 공적 전담기구를 구축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재원으로 ‘부실채권 정리기금’의 잉여금을 사용하는 것이 정치적·사회적으로 정당한 방법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현재 금융 소외계층 대량 양산의 계기는 외환위기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며 “따라서 그 과정에 투입된 공적자금에서 잉여금이 발생했다면 사회적 희생자들이 일정한 혜택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 후보도 ‘700만 금융 소외자의 재기를 위한 신용 회복 특별대책’을 발표해 이 잉여금 5조원과 정부 채권 등으로 ‘신용회복기금’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이 후보는 “이 기금으로 금융 소외자의 채무를 인수한 뒤 채무 재조정과 이자 탕감 등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 기금으로 서울, 광역시, 각 도청 소재지에 소액 서민대출은행을 하나씩 설립해 저소득층의 창업 자금을 대출해줄 것도 제안했다.
이명박 후보와 정치적으로 정반대 쪽에 서있는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후보도 공적자금 잉여금을 서민금융에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심 의원은 이번 달 안으로 재정에서 5조원을 투입해 ‘서민금융기금’을 만들어 상호저축은행과 신협 등 서민 금융기관들이 서민 대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내용의 ‘서민금융 기금법’을 국회에 발의할 예정이다. 심상정 의원은 “법안에 명시하지는 않겠지만 여기에 사용되는 재정은 공적자금 잉여금으로 조성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며 “공적자금을 통한 금융권 구조조정 방식이 현재의 금융 양극화를 초래한만큼 그 잉여금은 서민금융에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부실채권 정리기금은 외환위기 직후 은행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조성된 공적자금으로 2012년 청산시 적게는 5조원에서 많게는 9조까지의 잉여금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금은 전체 21조6천억원 규모로 정부 발행 채권 20조5천억원, 산업은행 차입금 5천억원, 금융회사 출연금 5700억원 등으로 조성됐다.
하지만 현행 자산관리공사법에는 잉여금을 출연 비율에 따라 금융회사들에게 배분하게 돼 있어 지난해부터 법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왔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이 잉여금을 정부로 귀속시키자는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은행연합회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은행연합회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은행들도 이 잉여금을 전부 가져가겠다는 입장은 아니다”며 “하지만 일단 현행법에 따라 은행들에게 잉여금을 배분하고, 그 뒤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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