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5개금융사 매각권고…재경부는 현행 고수
금융권 “민영화해 한판 붙든지 아님 업무 떼내야”
산은 “세계적 투자은행 되고 싶은데…” 정부 눈치
금융권 “민영화해 한판 붙든지 아님 업무 떼내야”
산은 “세계적 투자은행 되고 싶은데…” 정부 눈치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하 산은)의 앞날을 놓고 말들이 무성하다. 정부 주도 개발경제 시대의 산물인 산은의 역할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들 동의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향을 두고는 ‘동상이몽’이다. 감사원은 달아오르던 산은 구조조정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산은이 지분을 보유한 대우증권, 산은캐피탈, 케이디비(KDB)파트너스, 산은자산운용, 한국인프라운용 등 5개 금융회사를 모두 팔라고 권고한 것이다. 반면 산은은 투자은행으로의 전환 방안을 제시하며 대우증권과 산은자산운용이 꼭 필요하다고 맞선다. 최근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산은이 도마에 올랐다. 산은 구조조정 방향은 비난을 감수하며 현 상태를 유지하느냐, 민영화해서 투자은행으로 거듭나느냐, 국책은행의 고유 기능으로 업무를 축소하느냐 등 몇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시중은행·증권사들 “불공정 경쟁”=산은의 역할 재조정 논란은 최근 일이 아니다. 민간의 역할이 커지면서 애초 설립 취지였던 ‘개발금융, 정책자금 지원’이 유명무실해졌다. 외환위기 이후 반짝했던 부실기업 인수라는 ‘소방수’ 구실도 시들해졌다. 특히 최근 기업금융, 투자은행 영역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시중금융사들의 불만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마디로 “민간과 경쟁하고 싶으면 민영화하든지, 아니면 국책은행 본연의 구실만 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이다. 산은이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인수합병 등 업무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이 민간 금융사들의 불만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엘지카드 인수같이 민간부문이 할 수 없는 영역에서 산은은 꼭 필요한 존재지만 투자금융에까지 국책은행이 나서는 것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서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을 앞두고 덩치를 키우려는 일부 금융사들이 대우증권을 놓고 군침을 흘리는 것도 한 배경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의 핵심도 같다. 미국 쪽은 “민간과 경쟁하는 부문에는 정부 특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우리 쪽 협상단 관계자는 “수출입은행이나 기업은행은 미국에 비슷한 기관이 있어 방어하기가 쉬운데 산은이 문제”라며 “몇년 전 하이닉스 보조금 논란까지 있어서 이미지가 더 안 좋다”고 말했다. 산은 “투자은행으로 변신”=산은도 구조조정의 절박성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산은이 찾은 해법은 ‘세계적인 투자은행’이다. 싱가포르개발은행(DBS)을 모델로 제시한다. 현재 산은은 국내 은행 중 투자은행 부문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우증권도 투자은행 업무에 강점이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과 대우증권이 합치면 확실히 투자은행으로서 경쟁력이 있다”며 “투자은행은 규모가 중요한데 아직 국내에 그 정도 금융사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100% 정부 소유라는 산은의 소유구조다. 지금도 민간 쪽 불만이 많은데 정부 지분을 그대로 두고 투자은행으로 본격적으로 나서면 논란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투자은행 업무는 민간 영역이기 때문이다. 산은 내부에서도 이참에 민영화해 투자은행으로 ‘새출발’하자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한 산은 관계자는 “민영화하자는 쪽과 정부기관으로 안주하자는 두 흐름은 항상 있었지만 요즘은 전자가 주류”라고 말했다. 하지만 산은이 이런 내심을 털어놓기는 곤란하다. 재정경제부라는 ‘시어머니’가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국책은행은 반드시 필요”=재경부의 공식 입장은 “관련 태스크포스팀에서 연말까지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 분위기를 보면 최대 산하기관인 산은을 민영화시키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한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금융시장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산은을 민영화해도 좋다”며 “만약 산은이 없었으면 엘지카드가 살아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비상상황에서 정부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덩치 큰 금융기관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읽힌다. 다른 관계자는 “남북한 통일 시대가 되면 다시 정책금융이 많이 필요해질텐데 산은을 없애버리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재경부 인사적체 해소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존재다. 역대 산은 총재는 재경부 출신이 독차지하고 있다. 만약 산은이 투자은행으로 거듭나면 정책금융 업무만 따로 떼어내든가, 이 부분을 다른 국책은행과 통폐합해 새로운 국책은행을 만드는 것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재경부로서는 자기 산하의 영역이 줄어드는 결과가 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욕을 좀 먹더라도 그냥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을 것”이라며 “이번 금융연구원 용역 결과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안창현 김진철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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