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 두 곳이 국내에서 540억원 규모의 불법 공매도를 저지른 것으로 또 조사됐다. 지난해 홍콩 에이치에스비시(HSBC)와 베엔페(BNP)파리바에 이어 또 다시 투자은행의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 혐의가 적발된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글로벌 투자은행을 상대로 한 불법 공매도 조사의 진행 상황을 14일 발표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10월부터 투자은행 상위 10여개사의 무차입 공매도 여부를 조사해왔다. 이미 에이치에스비시와 베엔페파리바에서 모두 560억원 규모의 불법 공매도를 한 혐의가 확인된 데 따른 조처다.
이번에 적발된 이들 투자은행(ㄱ·ㄴ사)은 모두 5개 종목을 거래하면서 540억원어치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ㄱ사에서는 2022년 3∼6월 거래한 2개 종목이 문제가 됐다. 중복 입력된 차입 내역을 바탕으로 매도 주문을 내거나, 이미 담보로 잡혀 있는 주식을 이용하는 식이었다. 이에 매매거래 익일(T+1)에 결제 수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나자 사후 차입을 통해 결제를 완료했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ㄴ사는 2022년 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3개 종목의 무차입 공매도 주문을 낸 것으로 조사됐다. 부서끼리 주식을 빌려주고 매매하는 과정에서 소유 주식을 중복 계산해 문제가 된 경우였다. 한 부서가 다른 부서에 빌려준 주식을 또 다른 부서에 매도한 뒤, 주식을 받은 두 부서가 같은 날 해당 물량을 매도하는 식이었다. 직원이 수기로 대차 내역을 입력하는 과정에서 차입 수량을 잘못 기재한 사례도 확인됐다.
금감원은 유사한 주문이 반복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상 기간과 종목을 넓혀 조사하고 있다. 조만간 제재 절차에도 착수할 계획이다. 다른 투자은행을 상대로 한 조사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홍콩 증권선물위원회(SFC)와의 협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다만 이번 건의 제재 수위는 상대적으로 낮을 가능성이 있다. 에이치에스비시나 베엔페파리바와 달리 고의성이 없거나 미미하다는 판단을 받을 여지가 있는 탓이다. 금감원은 이번에 적발한 행위가 악의적인지 아직 판단하지 않았으며, 착오에 의한 무차입 공매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종목별 거래금액으로 미뤄 볼 때 시세에 유의미한 영향을 줬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앞서 에이치에스비시와 베엔페파리바는 공매도 규제 위반에 대한 과징금 제도가 도입된 후로 역대 최대 규모(총 265억2천만원)를 부과받은 바 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