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연합뉴스
우리나라 금융불안지수(FSI)가 위험 단계로 다시 올라가고 있다.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 때 위험 단계를 찍고 ‘주의 단계’로 내려왔던 지수가 지난 8월부터 넉 달째 상승세다. 태영건설 워크아웃발 불안으로 위험 단계에 재도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은 태영건설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보면서도 필요시 조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은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해 ‘사업 지속 또는 구조조정’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28일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달 금융불안지수는 19.3으로 전달(18.4)보다 0.9포인트 상승했다. 이 지수는 단기적 금융안정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로 12를 넘으면 ‘주의 단계’, 24를 웃돌면 ‘위험 단계’다. 지수는 지난해 11월 레고랜드 사태 때 23.4로 치솟았다가 올 7월 17.1까지 내려왔지만, 8월부터 다시 오름세다. 가계와 기업의 빚이 계속 늘고 ‘연체율’도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날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자 금융불안지수가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뇌관으로 꼽혔던 부동산 피에프 위기가 터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한은도 보고서에서 향후 금융안정을 위협할 요소 중 하나로 부동산 경기 불확실성을 지목했다.
한은은 아직은 태영건설 위기 영향이 제한적인 것으로 바라봤다.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 때와 같은 자금시장 경색 등의 징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지금 상황에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이 금융시장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본다. 만약 시장 영향이 커진다면 정부와 협력해 (한국은행도)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레고랜드 사태 때와 견줘 미국 등 주요국 통화긴축의 강도가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며, 태영건설 워크아웃도 예견된 사건으로 돌발 변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금융시장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은은 부동산 피에프 부실을 차단할 정부의 노력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부동산 경기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임을 감안해 금융 불안을 방지하는 정책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며 “취약요인이 두드러진 부동산 피에프에 대해 대주단들이 자율적인 협약을 통해 사업 지속 또는 구조조정 여부를 신속하게 결정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의 필요성도 언급됐다. 보고서는 “시장메커니즘에 따라 부실 피에프 사업장의 질서있는 정리를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옥석 가리기’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은은 부동산 시장을 중심으로 늘어난 기업부채에 대한 경고 수위도 높였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기업신용비율(대출금+채권+정부융자·명목 국내총생산 대비)은 124%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이후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부동산업과 건설업 대출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말∼2023년 말 이들 업종의 전 금융권 대출 증가액은 각각 175조7천억원, 44조3천억원으로 전체 업종 증가 규모(567조4천억원)의 38.8%에 이른다.
보고서는 “올해 들어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던 부동산 경기가 다시 위축될 경우 부동산 피에프 관련 금융기관들의 손실위험이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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