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중앙은행의 입장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연구과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종로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2023 MOEF-BOK-FSC-IMF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경제의 디지털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미래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중앙은행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민간과 같이 경쟁하면서 기술적·제도적으로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은행은 2021년부터 2년간 분산원장 기술을 이용해 범용 CBDC 모의시스템을 구현하고, 이를 금융기관의 테스트 시스템과 연계하는 실험까지 실시한 바 있다”며 “첫 번째 파일럿 테스트 결과 한국은행은 범용 CBDC에 대한 기술적·제도적 지식을 많이 축적하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속자금이체시스템이 잘 발달된 한국에 범용 CBDC가 과연 필요한지, 범용 CBDC가 도입되면 민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확실히 답하기가 어려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2단계 CBDC 파일럿은 여러 가지 상황들을 고려해 범용 CBDC 대신에 기관용 CBDC를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며 “CBDC를 통해서 화폐에 프로그래밍 기능을 부여해보고, 프로그래밍 기능이 가져올 수 있는 장점과 문제점들을 테스트해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이러한 방식으로 파일럿을 진행하는 이유는 CBDC 도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은행의 탈중개화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만일 범용 CBDC를 발행하게 되면 예금이 CBDC로 이동하면서 은행의 금융 중개 및 신용 창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번 파일럿에서는 은행으로 하여금 예금 토큰을 발행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통화시스템의 2계층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디지털 통화의 혁신적인 가능성을 점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2021년 8월부터 CBDC 모의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내년 10~12월 중에는 일반인 약 10만명을 대상으로 ‘디지털 바우처’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보육료, 생활지원금 등 각종 바우처 지급 때 디지털 화폐가 활용되는 것이다.
CBDC에는 크게 범용과 기관용이 있는데, 범용은 중앙은행들이 경제 주체들에게 직접 발행하는 것이다. 기관용은 지급준비금과 유사하게 금융기관에만 발행되어 금융기관간 자금 거래, 최종 결제 등에 활용된다. 범용 CBDC의 경우 소비자들의 CBDC 선호로 인한 은행 예금 감소, 통화정책 파급 효과 저하 등 부작용이 거론된 바 있다. 이에 한은은 먼저 기관용 CBDC를 중심으로 실험을 추진중이다.
전슬기 기자
sg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