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은행과 직접 채무조정 협상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법안이 국회 첫 문턱을 넘었다. 법안에는 빚의 일부만 연체돼도 잔액 전체에 비싼 이자를 부과하던 금융회사들의 관행에 제동을 거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국내 금융회사들의 연체채권 관리 체제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28일 회의를 열고 개인채무자보호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제정안은 채무자도 금융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게끔 한다는 취지에서 정부가 지난해 말 발의한 법안이다. 이번에 국회 심의 과정의 첫 절차를 통과했다.
법안은 소비자가 금융회사에 직접 상환기간 연장이나 이자 감면 등의 채무조정을 요청할 권리를 명문화했다. 지금은 신용회복위원회가 소비자와 금융회사 간 채무조정을 유도하는 방식인데,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조정 방식도 경직돼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법안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요청을 받은 뒤 10영업일 안에 채무조정 여부를 심사해 소비자에게 직접 회신해야 한다. 채무조정 요청권은 3천만원 이하의 소액 개인금융채권을 연체한 경우로 한정된다.
연체가산이자를 제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연체가산이자란 빚이 연체돼 기한이익을 상실하면 추가로 부과하는 이자를 뜻한다. 지금은 금융회사들이 빚의 일부만 연체돼도 잔액 전체에 연체가산이자를 부과하고 있다. 빚 전체의 기한이익이 상실됐다는 이유에서다. 법안은 기한이익 상실과 별개로 상환기일이 돌아오지 않은 빚 원금에는 연체가산이자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가령 분할상환금이 연체된 경우 원금 전체가 아닌 연체된 금액에 한해서만 연체가산이자를 받으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액의 개인대출에만 적용된다.
추심총량제 도입도 추진된다. 정부발의안에는 추심 횟수를 7일 7회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미국 등 주요 국가에서 채무자의 정상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추심 횟수를 제한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직장 방문이나 특정 시간대 연락의 금지를 요구할 수 있는 연락 제한 요청권도 법안에 포함돼 있다.
향후 법안 심의 과정에서는 연체가산이자를 둘러싼 쟁점이 부각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다른 주요 국가에 비해 연체이자가 과하게 부과되고 있어 제한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주요국 등에서는 기한이익을 상실한 경우에도 기존 약정 이자만 받도록 하는 등의 제한을 두고 있다. 반면 은행권은 헌법상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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