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예금금리 경쟁 자제령을 두고 은행권이 ‘눈치싸움’에 들어갔다. 국내 규제상 대출자산을 키우려면 예금도 같이 늘려야 하는데, 자칫 금리 경쟁에서 뒤처지면 예금이 외려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시건전성을 고려한 금융당국의 방침과 개별 은행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인 만큼 추이가 주목된다. 특히 올해 공격적인 ‘몸집 키우기’에 나선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에 눈길이 쏠린다.
20일 각 은행의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2분기 우리은행의 예대율이 97.4%로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하나은행이 97.1%로 뒤를 이었다. 예대율은 전체 예수금에 대한 대출금의 비율로, 국내 규제에 따라 은행들은 이 비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규제비율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직후 105%로 완화됐다가 지난 7월 100%로 정상화됐다. 통상 금융당국은 3%포인트를 안정적인 ‘버퍼’(완충지대)로 본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예금을 더 많이 확보해 예대율 관리를 강화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뜻이다.
예금 유치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기 쉽지 않은 국면인 셈이다. 특히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대출자산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대출을 키우면서 예대율을 관리하려면 예금도 그만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대출 성장’을 강조하고 있는 하나은행의 지난달 말 원화여신 잔액은 284조7621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7% 불었다. 국민은행(1.8%)이나 신한은행(1.4%)보다 증가율이 훨씬 높다. 우리은행도 지난 7일 이례적으로 전략 발표회를 열고 2027년 말까지 기업대출 잔액을 100조원가량 늘려 기업대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들 은행의 경우 그룹 차원의 이해관계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 모두 비은행 계열사가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인 탓이다. 은행 실적에 대한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올해 상반기 하나금융 비은행 계열사의 당기순이익은 3090억원으로 그룹 순이익(연결조정금액 차감 전)의 14.4%에 그쳤다. 우리금융의 비은행 기여도는 10.8%로 5대 지주 가운데 가장 낮았고, 지난해 상반기(16.1%)보다도 크게 떨어졌다.
결국 금융시스템의 거시건전성과 개별 은행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배치하는 국면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직후 금융회사들이 유치한 고금리 정기예금의 만기가 대부분 올해 10월 이후 돌아온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자칫 2금융권의 정기예금에 묶여있던 자금이 풀리면서 은행권으로 대거 움직일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은행권에 예금을 뺏기지 않기 위해 2금융권도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올라가 건전성이 악화할 수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연일 은행권에 “수신 경쟁을 자제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이유다.
은행권은 2금융권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대응 방침을 결정하겠다는 분위기다. 2금융권의 고금리 특판 예·적금 출시 움직임이 본격화하면 은행도 경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일부 새마을금고는 연 5%대 금리의 특판예금을 출시하고 있다. 저축은행이 이날 판매하고 있는 정기예금(1년 만기) 평균 금리도 4.17%로 한달 전보다 0.10%포인트 뛰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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