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두 달이 지났다. 340조원이 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업계 경쟁도 치열하다.
17일 고용노동부의 자료를 보면, 지난달 중순 기준으로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 가운데 약 20%는 아직 디폴트옵션을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디폴트옵션이 2021년 말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개정된 뒤 1년간의 시범운영 기간을 거쳐 올해 7월12일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으나 여전히 5명 가운데 1명꼴로 퇴직연금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형 또는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사전에 지정한 디폴트옵션 상품(각 은행·보험·증권사별로 상품 판매)으로 금융회사가 적립금을 자동 운용해주는 제도다. 디폴트옵션은 법적 의무사항이라 확정기여형 적용 사업장의 경우 미도입시 시정명령과 과태료 등이 부과될 수 있다. 개인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미설정시 처벌을 받지는 않으나 금융회사로부터 계속 디폴트옵션 설정 안내를 받게 되며,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을 수 있다.
여전히 디폴트옵션이 뭔지 모르거나 알아도 고르지 않았거나 지정해둔 상품에 아쉬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융감독원 누리집에 분기별로 올라오는 ‘디폴트옵션 비교공시’를 참고할 만하다. 퇴직연금 사업자별 적립금 규모와 수익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는 기존의 지위를 지키려는 은행과 이를 추격하려는 보험·증권사의 경쟁이 눈에 띈다. 은행이 굴리는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약 179조원으로 여전히 보험사와 증권사에 비해 압도적이지만, 퇴직연금 적립금 증가율은 지난해 말에 견줘 증권사가 은행과 보험사를 앞질렀다.
디폴트옵션은 투자위험 등급에 따라 초저위험·저위험·중위험·고위험으로 구분되는데, 고위험 상품의 경우 증권사 상품의 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투자자라면 증권사 상품을 고려할 만하다. 반면 중위험 수익률 상위 상품에는 보험사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디폴트옵션 비교공시에서는 상품별 수수료 비율도 안내하는 만큼 이 역시 고려 대상이다.
최근 대세로 꼽히는 상품 중 하나는 타깃데이트펀드(TDF)다. 티디에프는 가입자의 은퇴 시점을 목표 날짜(타깃데이트)로 설정하고 생애주기에 맞춰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비중을 조정한다. 나이가 젊고 퇴직까지 기간이 많이 남아있다면 위험자산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만,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원금을 보장할 수 있도록 안전자산에 집중하는 식이다. 티디에프로 운용되는 연금자산 규모는 2018년만 해도 1조1천억원에 그쳤지만, 2021년에는 9조9천억원으로 늘어났다. 전체 퇴직연금 시장에서 티디에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8년 0.7%에서 올해 1분기 8.1%로 올라왔다.
다만 분기별 공시를 매번 참고해가며 ‘갈아타기’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퇴직연금이 노후를 대비한 장기투자인 만큼 최근 3∼6개월의 수익률만 보고 ‘단타’로 디폴트옵션을 바꾸기보단, 투자 성향과 퇴직 시기를 고려해 선택한 뒤에는 장기투자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고용부 관계자는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분기별로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며 “퇴직연금은 장기투자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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