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7월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네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결 기조’가 길어지고 있다. 경제 환경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한은이 선택이 쉽지 않은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상승률이 2%대로 떨어지면서 물가 불확실이 다소 걷히고 있는 반면, 이번엔 잠잠했던 가계대출이 다시 들썩이면서 금융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13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한 배경엔 상승세가 누그러지고 있는 물가가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물가는 석유류 가격의 하락폭이 확대되고, 개인 서비스 가격의 상승률도 낮아지면서 당초 예상에 부합하는 둔화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달 2%대로 내려온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말 3% 안팎에서 등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5%가 될 것이라는 지난 5월의 경제 전망 경로가 대체로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은 입장에선 물가가 예측대로 움직이면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기준금리를 더 올리지 않고 현 수준을 유지한 채 주요국 통화정책 상황, 국내 경기 및 금융시장 추이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 셈이다.
대신 한은 앞에 놓인 과제는 고차 방정식이 될 전망이다. 기준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딜레마가 가득해서다. 우선 최근 벌어진 새마을금고 사태와 같이 고금리에 따른 금융 불안은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가파른 금리 인상이 하반기 경기 개선에 부담을 줄 가능성 역시 한은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달 정책금리를 동결하면서 속도 조절에 들어간 점도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물가 오름세가 둔화했다고 해도 여전히 물가안정목표(2%)를 웃돈다는 점은 기준금리를 쉽사리 내릴 수 없는 요인이다. 한은이 연내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선을 그으면서 아직은 추가 인상 가능성이 더 크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최근 재부상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는 한은의 중요한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달 3조5천억원 늘며 3개월 연속 불어났다. 기준금리 인상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8월부터 8개월 내리 줄다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다시 늘고 있다. 이에 한은 안팎에서는 통화긴축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효과가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모습이다.
한은이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과도한 가계부채 해소 등 금융 불균형 때문이었다. 만약 가계대출이 계속 빠르게 증가한다면 한은으로서는 금융 안정을 고려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 카드를 꺼내야 할 수도 있다. 한은의 통화정책 무게 중심이 물가 안정에서 금융 안정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번 금통위 회의에서 여러 금통위원이 가계부채 증가세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했다”고 밝히면서 “앞으로 한은은 정부와 함께 시장 불안을 최소화하면서도 중장기적으로 가계부채가 완만한 하락세를 갖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이를) 통화정책의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생각하고 대응해나가자는 것이 금통위원들과 저의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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