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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금융사 스스로 책임범위 정하라”…제2의 손태승 막을 수 있을까

등록 2023-06-22 19:05수정 2023-06-23 02:47

김주현 금융위원장. 금융위 제공
김주현 금융위원장. 금융위 제공

금융당국이 내부통제 제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로 했다. 앞으로 당국은 원칙만 제시하고 회사가 스스로 책임 범위와 내용을 정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방식이 금융권의 형식적인 내부통제를 이끌어내는 데 그쳐 경영진에게 실질적인 책임을 지우기 어려웠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조처다. 다만 새로운 내부통제 제도는 성문법 체계에 잘 들어맞지 않는 측면이 있는 만큼 제대로 안착할지 미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런 내용의 금융권 내부통제 제도 개선 방안을 22일 발표했다. 향후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개선 방안을 최종 확정해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대형 금융사고에 대한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을 묻는 데 실패하자 내부통제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 2020년 금감원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대한 내부통제 책임을 물어 중징계(문책경고)를 내렸으나, 대법원은 지난해 말 손 전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현행법에는 내부통제 기준 준수가 아닌 마련의 의무만 있어 처벌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당시 우리은행은 디엘에프와 같은 고위험 상품을 판매할 때 지켜야 할 절차를 내부통제 기준에 명시해놨지만, 실제로는 이를 대부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새로 마련한 제도의 핵심은 경영진의 책임 범위를 내부통제 과정 전반으로 넓히되, 그 내용은 회사가 스스로 명확하게 정하도록 한 것이다. 일단 대표이사가 직접 임원별 책임영역을 배분한 책무구조도를 작성해 금융당국에 제출한다. 가령 ㄱ임원은 금융범죄 방지를, ㄴ임원은 임직원 교육을 맡는 식이다. 책무구조도에서 배분해야 할 업무영역은 시행령에서 예시적으로 나열할 뿐이며, 제출한 책무구조도의 적정성을 당국이 승인하지도 않는다. 문제가 있을 경우 시정을 요구할 뿐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알아서 잘하라”는 취지다.

이 책무구조도를 토대로 임원에게는 각 영역의 내부통제 전반에 대한 책임이 부과된다.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할 뿐 아니라 그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미흡사항이 있으면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표이사의 내부통제 총괄 관리 의무도 명시된다. 어떤 문제가 장기간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등의 경우에는 내부통제의 시스템적 실패가 발생했다고 보고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이사회의 내부통제 관련 책임과 권한도 명문화된다.

내부통제 실패에 대한 제재 여부는 ‘상당한 주의’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금융사고가 발생했더라도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관리조치를 한 임원은 책임을 덜어주거나 면제해준다. 반대로 관리조치가 불충분하게 이뤄진 경우에는 신분제재를 부과한다. ‘상당한 주의’라는 기준의 고려사항은 하위규정에서 명시하나, 결국에는 개별 건마다 그 특성을 고려한 판단이 이뤄질 전망이다.

영미법 체계의 금융규제·감독 방식을 따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이 관련 법령이나 감독 과정에서 기준을 세세하게 규정하지 않고 대신 원칙만 제시하게 되는 탓이다. 규정 중심의 감독에서 원칙 중심의 감독으로 전환하는 첫 발걸음인 셈이다. 앞서 당국은 일정 규모 이상의 금융사고를 ‘대형 금융사고’로 규정하고 최고경영자의 책임을 명문화하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에 대해서도 논의했으나, 업계의 반발과 내부통제 본연의 특성을 고려해 금융회사에 자율성을 좀더 부여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다만 제도가 안착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특히 성문법 체계를 따르는 국내 사법부에서 이런 원칙주의 감독을 존중할지 불투명하다는 평가다. 회사와 임원의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조직문화가 원활하게 확산될지도 관건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규정 중심 규제방식이 아닌 원칙 중심 규제방식을 채택한 결과, 시행 초기에는 막연한 불안과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모범사례 전파 등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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